오랫동안 해왔던 일, 학습, 경험에서 찾기[정철상의 취업백서](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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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해왔던 일, 학습, 경험에서 찾기[정철상의 취업백서](20)
  • 뉴스앤잡
  • 승인 2025.05.2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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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바꾸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직장인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나 적성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물론 도저히 맞지 않는다면 전공을 바꾸거나 이직을 통해 커리어 체인지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일이나 학습, 전공, 활동, 경험, 경력 등을 살펴보면 의외로 그 속에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천직을 찾을 수도 있다.

실례로 내가 직장에 다닐 때 재무팀의 한 직원이 그러한 케이스였다. 그 직원은 경력이 5~6년 정도 되는 2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다. 그는 일이 재미없다며 의무적으로 출근해서 근무하고 퇴근 후에는 늘 매일같이 술을 즐기는 직장인이었다. 그에게 ‘회계 업무 특성상 매일같이 숫자를 들여다봐야 하니 힘들겠다’고 위로하는 식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내가 더 힘들지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니 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며칠 만에 끝나는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몇 개월간 붙들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동시에 수십여 가지가 넘을 때도 많았다. 프로젝트가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 하나하나를 잘 따라가지 못하면 엉켜서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매일같이 매출, 매입을 마감해야 한다. 수치가 맞지 않을 때 는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1원 하나 틀리지 않아야 일을 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하루를 완성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놀라웠다. 나 같은 경우에는 단지 숫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숫자 그 자체를 매일같이 들여다본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리 정확하게 숫자로 마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흥미는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에게 수리 쪽에 재능이 있고 재무, 회계 쪽으로 분명 흥미와 적성이 있으며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특성이 본인에게도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이후 그는 퇴근 후 매일같이 가지던 술자리를 줄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는 도서관에 들르기도 하면서 기존과 다른 직장생활을 했다. 그 사이 나는 퇴사를 하고 한동안 그를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도 퇴사했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이제는 회계사무소를 개업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일깨워준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깜짝 놀랐고 또한편으로 무척 기뻤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해왔던 업무일수록 자신의 업무를 가치 없게 여기 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분야 업무에 대해 거의 모른다.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어느 정도 흥미가 있다는 사실도 반증한다. 그런데도 정말, 도저히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그 일을 견디지 못한다.

생각을 한 번 해보자. 자신과 정말 맞지 않는 이성과 10년, 아니 1년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겠는가. 난봉꾼이 아닌 이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학생들은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전공이 맞지 않는다며 다시 자신이 꿈꾸는 전공을 위해 재입학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특 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4학년까지 전공해왔다는 것은 기본적인 흥미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럴 때는 일단 졸업하고 이후 재입학이나 석사과정으로 보완하는 전략으로 재구성하는 편이 좋다.

가업을 이어받는 사례도 그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가업을 이어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평생토록 부모님이 해오던 일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남보다 그 일을 수월하게 해 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어묵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어릴 때부터 오뎅보이라고 놀림을 받던 삼진어묵의 박용준 대표가 그랬다. 그는 어묵과 관련된 일을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며 전혀 다른 인생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어묵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로서는 조건이 열악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던 때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도 안 되어 그는 20 배가 넘는 매출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다. 성장의 비밀은 그가 기울인 정성과 노력도 한몫했겠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 학습, 경험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도 한몫했다. 다만 기존산업과 똑같이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조금 더 고급스럽게 카페나 베이커리 빵집처럼 ‘어묵 베이커리’를 통해 고급 먹거리로 재탄생하도록 만들었다. 어묵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그러니 당신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 학습, 경험, 활동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직업이나 직무는 무엇이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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