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인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이 대표작 『사피엔스』에서 자연의 질서와 상상의 질서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는 믿음과 관계없이 작동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믿음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력은 사람들의 믿음과 관계없이 실재하고 작용한다. 반면 인간이 만든 종교는 사람들의 신앙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사라진다.

이러한 유발 하라리의 생각을 HR에 대입시키면 인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인사제도를 신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가 호수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돌멩이가 법제화된 이후 조직에 미친 변화는 무척 크다.
문제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제화의 취지상 조직 내에서 해결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벌어지는 양상은 조직내 해결 보다는 외부 기관을 통한 진정, 고소, 고발 등이 많다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에게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만, 고용노동청에 직접 진정을 제기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민사소송 등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음은 2020년부터 2023년의 직장내 괴롭힘 관련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사건 현황이다.(2023년에 접수된 직장내 괴롭힘 신고사건은 1만28건이나, 그해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356건 제외)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사건 중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거나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 등 중요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를 실시한다. 그 외에 대해서는 노동청에 진정을 제가하더라도 노동청은 회사에 신고여부, 조사 여부 등을 확인하고 사용자에게 객관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받아 이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근로자들이 회사가 아닌 고용노동청에 직장 내괴롭힘 신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신고제도나 고충처리 제도, 절차 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신고한 근로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조사를 하기 보다는 회사 내에서 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직책자 등 가해자들의 입장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과 함께, 비밀 준수나 분리조치 등 등 피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및 조사 등 사건처리나 고충처리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고충처리 기구를 정비하고, 직원들에 대한 상담을 강화하고, 조사나 피해자 보호 등의 조치를 보완하고 있지만, 여전히 직원들은 회사의 이러한 제도를 외면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도가 아무리 좋고 잘되어 있더라도 그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인사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오면 자연의 질서와 달리 인간이 만든 제도는 구성원이 그 제도를 믿어야만 비로소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자연의 질서와는 달리 인간이 만든 질서인 제도는 믿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충처리 기구나 절차 등을 강화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구성원들에게 해당 제도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한 설명회나 교육 등을 일회성이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인사관리는 마음관리이기도 하다. 그것도 인사제도에 대한 신뢰를 갖게하는 마음관리가 제도 개선보다 더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