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처럼 살아가던 간호학과 신입생 [김상엽의 지피지기(知彼知己)](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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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처럼 살아가던 간호학과 신입생 [김상엽의 지피지기(知彼知己)](19)
  • 뉴스앤잡
  • 승인 2023.02.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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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직원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행정부서에서 사무를 보조하고 소정의 장학금을 받는 근로장학생은 근무강도가 낮고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어 재학생들에게는 0순위 아르바이트다. 어느 날 공고를 보고 초췌한 모습의 한 여학생이 찾아왔다. 작은 키에 너무 약해보이고 연속근무가 불가한 시간표를 보고 타 부서 동료들은 모두 반대했다. 뭔가 절박한 사연이 있어 보였고 대화를 나눠보니 똘똘해 보여 전화응대라도 시켜보려고 데려왔다. 우리부서에서 학과별 채용공고와 알바공고를 발굴해 공지하고 전화받는 일부터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학생과 얘기를 나눠보니 화장끼도 없고 초췌한 이유가 있었다.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이라는 얘기였다. 전문대 간호과는 사실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할 정도의 빽빽한 학사일정으로 유명하다. 좀 여유있게 4년동안 배울 걸 3년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09~18시 수업, 19~24시 학교앞 식당서빙, 04~06 신문배달로 학교를 다니며 초등학생 막내동생을 둔 너무 가난한 네 형제의 가장이었다. 세상과 부모, 가정환경을 원망해 본 적이 없냐고 물으니 그러기에 지금 내가 강해졌고, 힘든 3교대 병원생활에 대한 연습중이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후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오면 공부할 수 있게 가급적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필기구도 몇 개씩 챙겨주고 강의자료 복사도 해주고 잠시 졸아도 눈 감아 줬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 학생은 많은 걸 누리고 싶은 한창 나이였지만 화장 한 번 하지 않고 삼각김밥 하나로 점심을 때우며 동생들을 위해 용돈을 모았다. 항상 교직원들 사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고 교직원보다 더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고, 내가 짜장면을 시켜주면 꼭 음료수를 뽑아올 정도로 경우가 바른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목표를 갖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고 싶어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이 힘들고 어려운 한계의 삶을 살아왔으니 돈 보다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변명이나 핑계로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하고 작은 일로 불평불만하지만 그 학생을 보면서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새내기 학생은 우리 사무실 근무를 마친 2년 후 졸업학년에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모 국립대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입사가 내정된 순간 박카스 한 상자를 들고 나를 찾아와 그동안 고마웠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학생은 지금도 어디선가 그때처럼 여전히 잡초처럼 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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