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역사 ①1980년대] 그물을 던져, 보통형 인재를 낚다! 이종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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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의 역사 ①1980년대] 그물을 던져, 보통형 인재를 낚다! 이종구 경희대 교수
  • 서설화 기자
  • 승인 2022.04.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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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기업 대규모 공채, 그물형 채용방식
필기- 영어와 전공, 영어와 상식
면접 - 집단면접
인재상 - 관리자형 인재상
이종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채용시장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AI채용, 화상면접, 온라인필기시험 등 채용시스템이 비대면으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 포스트코로나에도 비대면과 대면이 어우러진 형태로 채용전형이 지속될 것으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예측했다.

취업정보를 단순히 입사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취업의 역사를 읽는다면 어떨까?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활동이다. 채용시장은 변동성이 커서, 앞으로 절대적인 지침을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시대별 흐름을 읽는다면, 미래 채용트렌드의 방향을 제시하고 더 나은 취업진로 상담 프로그램의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취업의 역사를 꿰차고 있는 이종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교수, 그는 ‘한국 취업문화·공채문화 40년사‘를 집필하며 취업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단순한 정보로만 다루고 있는 취업분야를 학문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취업 및 직업의 트렌드는 산업사회의 자화상이요, 생물과 같은 것인 만큼 지속적인 탐구와 연구를 요하는 분야이다’라고 이종구 교수는 전했다. 그가 전하는 취업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1편 [취업의 역사 ①1980년대]

2편 [취업의 역사 ②1990년대]

3편 [취업의 역사 ③ 2000년대]

 

1980년대 채용 역사와 취업문화 

 

Q. 1980년대는 경제호황기다. 채용제도는 어떠했는가?

“한국의 채용제도는 1980년대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1980년 이후 약 10여 년간 그룹 일괄 정기공채를 상하반기로 나누어서 실시했다. 대기업들은 86년 이래 3년 동안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이 지속되었고, 사상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 시기 대학에 입학할 때는 졸업 정원의 30%를 증원해서 모집하고 졸업 시에 학생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있었다. 졸업정원제가 빚어낸 대졸 과잉공급현상으로 대규모 정기공채, 그물형 채용방식이 나타났다.

1980년대 한국 대기업의 채용패턴은 공급과잉으로 구직자들을 선발하기 위해, 양적으로는 대규모 채용이 불가피했다. 대규모 정기 공채에 맞춰 필기시험으로 인력을 선발하며 공채문화에 변화가 큰 시기였다.

삼성물산이 1957년 사원선발을 시작한 이래 한국 채용사 50년에 비춰보았을 때 1980년대 만큼 대규모 채용을 한 적은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은 1984년 럭키금성그룹이 국내 기업 최초로 인턴사원제를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Q. 1980년대 대학사회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과 노사분규 등 혼란과 혼동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면접방식은 어떠했는가?

“대기업들의 면접은 사회에 순응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재선발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따라서 인적성 위주의 기본지식과 기본소양평가가 면접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면접경향은 기업정신과 인성, 기본지식과 전공, 기본소양과 자질 등을 평가했다.

1980년대 집단면접의 평가위원은 사장단과 임원진이 주축이었다. 단시간에 다수 평가하여 심층적 질의응답에 어려움이 있었다. 인성, 윤리, 자질을 평가하였다. 화합형, 보통형 인재 선발 위주로 진행하였다.”

 

이종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Q. 대기업 채용에서 필기시험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시기는 1980년대부터라고 들었다. 그 당시 필기시험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고속성장을 해온 대기업들은 기업규모에 맞는 인력수요와 과잉공급되는 대졸인력을 선발하기 위해 서류, 면접만으로 치러오던 채용방식에 필기시험을 도입했다.

1980년대 대기업들의 필기과목은 영어와 전공 혹은 영어와 상식이었다. 영어는 토익이나 토플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필기시험 도입은 기본지식 테스트를 통해 당락을 결정짓는 만큼 인재선별과 업무 수월화에 매우 용이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필기시험은 있었다. 관공서와 은행, 언론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혹은 삼성을 비롯한 극히 일부 대기업들이 필기시험을 시행하고는 있었지만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추세는 아니었다.“

 

Q. 아날로그 시대인 1980년대, 인재상은 어떠했는가?

“그 당시 기업들은 관리자형 인재상을 선호했다. 관리자형 인재상은 협동과 성실, 직업의식과 희생정신, 책임과 의무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리더십 유형이다. 이 시기에는 노동집약적이고도 집단주의에 맞는 인재상이 지배적이었다.”

 

Q. 1980년대, 시대별 구직자의 직업선호도는 어떠한가?

“1980년대 우리의 직업사는 시대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 선호직업은 금융업과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된다. 1980년대의 산업구조조정정책과 산업육성정책으로 중화학공업 중심의 구조고도화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실물경제의 꽃으로 불리는 금융권이 활황세를 타면서 많은 대졸자들이 경쟁적으로 금융권에 입사했다. 특히 1980년대는 증권의 시대로 불릴만큼 증권사 직원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한편 중화학공업의 약진으로 국민경제의 성장과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가문화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급증하여 여가산업 종사자들이 선호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종구 교수  

이종구 저 / 도서출판 청람
이종구 저 / 도서출판 청람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2011년 노동부가 인가한 사단법인 ‘한국취업진로학회’를 창립했다. 한국기업경영학회·국제지역학회·아시아유럽미래학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잡지, 신문, 방송사에서 10여년 동안 취업전문기자 및 취업방송진행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직업인들을 취재한 경력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취업문화·공채문화 40년사‘, ‘취업정보분석과 입사전략’, ‘취업전략과 경력개발’, ‘금융권 정보분석과 취업전략’, ‘면접정보분석과 입사전략’ 등이 있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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