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힘이 없는 목소리네요. 무슨 일 있어요?” “좋은 일 있는가봐요. 목소리로…” 만나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가끔씩 전화를 하면 희한하게도 내 마음을 읽어낸다. “바쁘신가 보네요. 나중에 다시 통화드리겠습니다. 목소리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는 귀신(?)같은 친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면 친구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나온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표현부터 생소한 것도 많다. 죽마고우, 관포지교 등 익히 아는 것 외에도 문경지교(刎頸之交 : 목을 벨 정도의 위험에도 생사를 같이 할 절친한 교제), 저구지교(杵臼之交 : 절굿공이와 절구와 같은 관계.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 수어지교(水魚之交 : 물과 고기의 관계와 같은 사이), 빈천지교(貧賤之交 : 가난하고 어려울 때의 사귐), 총각지교(總角之交 : 머리를 땋고 지내던 시절에 사귀던 사이) 등 표현이 재미있다. 그만큼 친구 사이의 교분이 생겨나는 원천과 관계의 종류를 보여주기도 한다.
거기에 조금 생소한 것이 있다. ‘지음지교(知音之交)’로 ‘소리를 알아 봐주는 친구’를 지칭한다. 중국 진(晉)나라 때의 거문고 달인에 얽힌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종자기(鐘子期)’라는 사람이 친구 ‘유백아(兪伯牙)’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속마음을 읽었다고 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수백년에 걸쳐 모든 분야에 걸친 세분화는 세상의 진화와 원천이자 결과로 맛물리며 진행되어왔다. 핵심은 소통을 통한 협력과 경쟁 그리고 구매력의 확대였다. 최근 정보소통의 핵심 도구인 ICT로 지식이 축적되고, 숨은 욕망은 호출되고, 수송도구가 발달되며 글로벌차원의 교류가 무한정 확대되었다. 그 욕망을 채우는 극상의 세상에서 팬데믹을 만났다.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다. 자칫 목숨도 내어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없이 살아갈 수 없다. 넓은 의미의 거래관계에서 좁은 의미에서의 친구, 동료까지. 친소(親疏)수준에 따라 믿음의 정도도 달라지고 거래도 달라질 것이다.
더 큰 변화가 앞으로 수년에 걸쳐 거칠게 다가올 기세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기술’이 있다. 기계와 디지털이라는 IT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언택트(UNTACT)사회가 한층 발전할 것이라고 미래사회를 전망한다.
문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사회가 지속되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얼굴을 숨긴 사기꾼이 기세를 떨칠 것이다. 지금도 ’그 놈의 목소리’ 만으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소리’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기계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를 알아보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단순히 누구인지를 아는 것을 넘어 건강, 기분, 통화자의 호감, 비호감까지...
만나는 순간의 목소리로 친구의 상태를 짐작하며 물어보는 훈련을 하자. ‘어디 아퍼? 피곤하구나. 힘이 없네. 잘 안돼? 뭐가 힘든 모양이구나’ 핸드폰을 타고 넘어 나오는 말에도 그런 방식으로 짐작하고 한 번 물어보고 가자. 이런 연습과 훈련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대학생 때는 더 좋을 것이다. 상대의 소리를 알아주는 지음지교의 관계를 만들자.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전화를 받는 순간에 상대 목소리의 신뢰도를 측정해서 알려주는 앱(app)이 나오면 떼돈을 벌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