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진로’하면 대학 입학, 전공 선택, 대학원 진학, 직업 선택, 스펙, 취업, 이직, 창업 등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경우에 따라 어떤 진로는 늦춰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시기를 놓치면 그 이후로는 회복하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렵고 힘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생활 동안 앞으로 나아갈 사회생활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존에 해왔던 시험공부와는 다소 다른 방식의 준비가 필요하다. 1, 2학년 때만 해도 시간적 여유가 충분할 것 같지만 상당수의 대학 졸업생들은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비해 산업의 규모는 커졌으나 여전히 일자리는 부족하다. 인구가 완전히 역전되기 전까지 취업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23년 기준으로 졸업 후 취업하는 데 평균 11개월이 걸린다. 누군가는 졸업 후 2년이 흘러도 취업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취업진로 상담을 많이 의뢰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황에서라도 충분히 회복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인재가 준비되면 준비될수록 기업들은 더 빠르게 채용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취업 역량을 올리면서도 근본적으로 나의 체질을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사실 내가 누구보다 직업적으로 갈등해왔던 사람이었다. 30대 후반까지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미숙아였다. 미리 진로를 계획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채용 분야에서 일을 하다 뒤늦게 나와 같이 진로 갈등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보다 더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취업 방안을 제시해줄 취업진로지도자 육성의 필요성을 느껴서 10여 년 넘게 교사, 강사, 교수, 상담사, 컨설턴트들을 양성해왔다.
나는 20여 년 전에 채용담당자로 활동했다. 지금도 대기업, 공기업, 방송사, 금융권 등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조직의 채용 업무를 도맡아왔다. 그러면 마치 대단한 과업을 수행해온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대부분은 하찮은 업무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채용 업무를 맡겼던 조직들은 명목상 채용 업무를 전문기관에 외주함으로써 공정성을 지키고 있다고 외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스펙 위주로 인재를 채용할 것을 은밀히 요구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채용순위 조작을 노골적으로 요구해왔다.
지금이라면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의 차별적 관행이 그렇게 성행했다. 그러던 기업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했다. 심지어 국가 주도적으로 불필요한 스펙을 쌓는 일이 없도록 채용의 공정성을 유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업들은 국가보다 더 빠르게 채용 방식을 자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꼭 도덕과 공정을 중요시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조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이익을 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익과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기에 채용 방식을 스스로 바꾸게 된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스펙 위주의 채용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인재를 채용해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유리했다. 누구나 배에 승선만 하면 계획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맑은 날에 갑작스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태풍이 불고, 미래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단지 학벌이 좋고, 학점이 높고, 어학 점수가 높고, 자격증이 있는 것만으로는 조직이 직면한 변화무쌍한 상황을 대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먼저 간파한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기업이 즉각적으로 채용관행을 바꿀 수는 없으니 분산투자를 하기 시작하며 실험한 결과다. 처음엔 인재의 95%를 스펙위주로 뽑다가 80%, 70%, 60%로 그 비율을 낮추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50% 이하로 비율을 낮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단연코 역량 중심의 채용으로 이동했다.
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꿈이 중요하다, 인생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진로를 설계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직무 역량을 쌓고, 좋아하는 일을 만들어가는 데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고도성장기에도 누구보다 많은 진로 갈등을 겪어온 장본인이었다. 소위 말하는 지잡대에, 스펙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고, 의지력도 나약했다. 덕분에 누구보다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해왔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렇게 온몸으로 부딪힌 덕분에 폭풍우 치는 정글 속에서도 살아남는 힘을 길렀다. 그동안 익혀온 내 삶의 교훈을 젊은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