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별종은 어떤 회사에서도 안 받아주겠죠?”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25)
상태바
“저 같은 별종은 어떤 회사에서도 안 받아주겠죠?”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25)
  • 뉴스앤잡
  • 승인 2022.11.15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업·진로 전문가로서 어느 방송에 출연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곧장 떠오른 상담 사례가 있 었다. 내가 만난 수만 명의 상담 의뢰자 중에서도 단연 잊히지 않는 E의 이야기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E는 동성애자 남학생이었다. 이 문제 때문에 앞으로의 취업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좋을지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를 경우 국내에서는 취업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외국으로 떠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대답하기 난감했지만, 고민이 가볍지 않고 진지하며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 잘 풀어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성정체성 혼란’이라는 문제도 진로 선택 과정에서 하나의 장애 요인임은 분명하다. E가 또 한편 걱정하는 연애나 결혼 문제 역시 누구나 풀어나가야 할 인생의 중대 과제 중 하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지지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만큼 모든 짐을 한 개인이 감내하기도 어렵고, 여러 사람 앞에 공개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만일 당신이라면 뭐라고 조언해주겠는가?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자. 이 청년의 문제가 당신의 진로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 아마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과 전혀 무관한 특수한 진로 문제라고 여길 것이다.

처음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누구나 당면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논리를 한번 들어보라. 일단 나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사회적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로 조언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분야에서 사회적 입지를 구축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우선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안 그랬다가는 전문가로서 성장하기도 전에 심각한 감정적 손상을 입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테니까.

물론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인정할 때까지 성공을 미룰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해 보였다. E는 자신이 성정체성을 찾은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섣불리 밝힐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이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최소 몇 년간은 좀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E는 성정체성이 여성 쪽으로 향한 만큼 간호사나 스튜어드 쪽으로 직업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성정체성을 따지기 이전에 E는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 쪽에 감각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디자인 계통으로 지식을 더 깊이 파고들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길 권유했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도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대부분의 상담에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개인 스스로가 최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가려는 삶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상담의 경우는 그걸 강요할 수 없었다. 남다른 고민으로 혼자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 E에게 스스로의 삶을 다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본인의 행복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도 말하지 않았는가. “미칠 정도로 혼란스러울 때는 자신을 기만하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이다. E는 현재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고 맘 편하게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일단 말렸다. 그렇게 해외로 나간다 해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처럼 편견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단지 동성애자여서만은 아니었다. 여기에 한국인이라는 소수 민족 사람이라는 것과 재력이나 특별한 기술력이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해져 오히려 더 갈 곳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이 점을 함께 언급하며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E에게 일단 5~6년간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데 온 힘을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그때까지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인내하며 전문가로서의 역량과 경력 구축에만 온전히 힘쓰길 권했다.

사실 이건 성체성이라는 장벽을 가진 E에게만 해당되는 조언은 아니다. 학벌이나 경제력 등 또 다른 진로장벽에 가로막힌 사람들도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고 나아가야 한다. 사실 E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걱정만 하며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옳지 않다. 분명 상황이 특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커리어 구축을 소홀히 한다는 건 변명밖에 안 된다. 그랬다가는 문제가 더더욱 심각해질게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오를 때까지는 그저 묵묵히 자기 성장에 초점을 맞춰보라고 말해줬다. 그때가 돼서 부모님께 진실을 밝혀도 결코 늦지 않으니 말이다. 더불어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이성과도 만나보길 권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