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 여성이 찾아왔다. 공무원 시험을 치른 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단다. 이번 시험마저 틀어진다면 앞으로 도대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그녀는 공무원 시험을 치기 전까지 별다른 특기도 경력도 없이 비정규직으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단다. 결국 자괴감에 우울증까지 생겨 히키코모리처럼 1년간 집 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2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거다. 앞으로 시험을 더 준비해야 할지, 이제라도 꿈을 찾아나서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100:1의 경쟁률 고시 지옥, 기약 없이 버틸 수 있나?
청년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임용고시 등 각종 고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거다. 특히 채용 인원 이 아무래도 더 많은 일반직 공무원 시험에 다수가 도전한다. 한 해 대 학 졸업생이 55만 명쯤 되는데, 그중 17만 명가량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하니, 3명 중 1명꼴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셈이다. 물론 중도 포기한 사람들도 있으니 수치를 줄여야겠지만 재수, 삼수 하는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까지 합쳐보면 최소 매년 20여만 명의 청년이 고시에 매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 이토록 많은 젊은이가 취업 대신 고시를 택할까' 의문이 들었다. 고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학생들은 시험 준비 기간을 보통 2~3년으로 본다. 그 기간 동안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다가 실패하면 학교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 경우 취업 경쟁에서 밀리기 쉽지만, 그나마 그때라도 재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새로운 분야로 전환하면 괜찮다.
문제는 대학 졸업 후 5~6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시험에만 매달린 사람이다. 이들이 고시에서 낙방할 경우는 실로 난감하다. 사실상 요즘은 너무 많은 사람이 고시에 매달리다 보니 예전에 비해 합격하기가 훨씬 어려운데 말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졸자가 9급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졸자가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길 정도였다. ‘상식이 없어도 어떻게 저렇게 상식이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게 하던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통과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군대 고참은 제대 후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철상아, 유비하고 장비하고 제갈공명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거, 니 알았나?”라고 했다. 나는 이 뜬금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 사람들 있다 아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란다. 와! 이번에 시험공부 하다가 알았다 아이가.” 헉! 꾸며낸 이야기라는 생각들 정도로 믿기지 않을 게다. 하지만 분명 실화다. 그런 그도 경찰이 됐다.
그런데 이제 이런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최소 100: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공무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공무원 채용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1만 명 정도를 뽑는다고 추정하면 평균 20만 명이 지원자로 몰린다. 합격률이 고작 5%에 불과한 셈이고, 지원자 100명 중 많아야 5명이 합격한다는 소리다. “나는 5명 안에 포함될 거야!”라는 희망으로 누구나 도전하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통계로만 보면 안 될 가능성이 95%인데, 정작 자신은 5% 안에 들 거라고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건 지나친 긍정이 아닐까.
게다가 각종 학원과 고시원들이 성행해서 족집게 과외나 교육을 받지못하면 통과가 어렵다는 게 관행처럼 인식되어 시험 준비 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지방 출신의 경우 학원비에 서울 생활비까지 이것저것 다 따지면 한 달에 200~3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5~6년 준비한다면 1억 원 이상이 날아가는 셈이다. 기회비용까지 산정하면 실로 엄청난 손실이다. 이는 개인적 손실일 뿐 아니라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럼에도 전국에서 찾아온 공시생들이 신림동과 대방동 학원가 쪽으로 여전히 몰리고 있다.
공무원학원들이 강남과 전국 지역으로 속속 진출하며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알기로 일부 고시학원 종합반의 경우 공부하는 동안 외부로의 출입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쇠창살 달린 창 문으로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감옥 같은 환경에서 비싼 돈과 시간을 투자해 기약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거다. 한마디로 제 발로 ‘고시 지옥’ 에 들어가 갇히는 셈이다.
원하는 대로 공무원이 되면, 과연 행복할까?
다행히 그런 고시 지옥을 뚫고 원하는 대로 공무원이나 교사, 판검사가 되면 행복할까? 공시생들은 과연 어떤 희망을 갖고 그토록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걸까? 그들에게 이유를 직접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들이 돌아왔다. 공무원은 근무 시간이 적고 일이 많지 않아 편하다. 해고되지 않고 정년을 보장받으니 안정적이다. 대인관계가 서툴러도 좋고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므로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 내향적인 사람에게 적합하다. 시험을 통해 공정하게 평가받으니 나 같은 모범생 스타일에게 유리하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했기에 시험에는 자신 있다. 부모님이 좋아하신다. 직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 주변 분위기에 휩쓸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모양이다.
이런 생각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고 현직 공무원들은 말한다. 일단 공시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일이 편하지 않다는 거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업무량을 처리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압박 때문에 정년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고, 상황에 따라 지방 전근이나 공기업 전환이라는 리스크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대인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업무 자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도전적이지 않아 생동감을 못 느끼겠다며 직무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또래들보다 박봉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공무원도 많다. 이처럼 공무원들 중에서도 생각처럼 만족스럽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각종 고시에 집착하는 청춘들은 분 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이런 불평과 투덜거림조차 부러울지 모른다. 수년간 고시에 매달려도 아무 성과 없는 자기 현실 과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비참함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고시 준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그토록 많은 비용과 화창한 젊은 날의 귀한 시간까지 모두 소진해야만 하는 이 일이 과연 스스로에게 행복과 만족을 안겨줄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