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며 잊혀지지 않는 희미한 추억들이 하나쯤은 있는데 오늘은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며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추억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벌써 십 수년 전 일이다. 처음 대학 강의를 시작하던 어느날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연락이 왔다. 대동제 기간 학우들에게 유익한 시간을 마련하고자 취업특강을 기획하고 있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술마시고 초청가수 공연에 빠져있을 학생들이 취업특강 시간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너무 신선해서 흔쾌히 수락하고 당시엔 초보강사였기에 나름 성실하게 강의준비도 하고 리허설까지 끝낸 후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대동제 기간이라 그런지 계단 강의장에 꽉 들어찬 200여명의 학생을 보니 순간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2시간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 표정을 보니 다행히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그날은 5시에 마치고 수원역에서 5시50분 부산행 새마을호를 꼭 타야해서 강의를 마칠 무렵 학생들에게 열차 시간이 있어 질문은 이메일로 받겠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자마자 질문을 한다며 학생들 20여명이 우르르 올라왔다. 열차시간에 신경쓸 겨를도 없이 모두 응대하고 시계를 보니 5시20분, 금요일 오후 이동시간과 열차시간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비 내리는 퇴근시간 수원시내 정체는 예상도 못했고 경황이 없어 콜택시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걱정하면서 강의장 밖을 뛰어 나오는데 앳되 보이는 한 여학생이 마중을 하겠다며 따라나섰고 밖에는 택시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학생은 “선생님 열차시간 놓칠까봐 제가 콜택시를 불렀다”며 쓰고 있던 빨간 우산과 캔커피를 건넸다.
열차시간까지 25분, 교직원도 아닌 학생에게 환송을 받은것도 고마운데 강의를 통해 진심이 전달된 것이었을까. 그 학생은 “오늘 강의를 통해 제 인생의 변화가 온 것 같아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우리 아주대를 꼭 기억해달라며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그 찰나에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공대 2학년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연락처라도 나누고 취업에 필요한 도움이라고 줬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날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났지만 열차로 수원역을 지날 때마다 그 날 받은 작은 환대가 너무 고마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2학년 여대생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 학생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나면 꼭 커피 한 잔 대접하고 빨간우산 돌려드리고 싶네요. 학생이 베푼 친절로 아주대학교의 좋은 이미지까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답니다. 각박한 세상, 작은 배려가 주위를 따뜻하게 만드는 여유를 강사인 제가 배웠습니다. 그날 정말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