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의 경제학 [김대유의 행복의 온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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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의 경제학 [김대유의 행복의 온도](7)
  • 뉴스앤잡
  • 승인 2020.01.2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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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과 1인가구의 경제학을 선명한 정책으로 제시하는 정당이 필요

인생은 길을 따라가고 길을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다. 길이 보이면 길을 따라가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생노병사를 짊어진 인간에게 길은, 젊다 해서 힘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익숙하고 쉬운 것은 아니다. 혼자 가든 함께 가든 길은 누가 대신 걸어주는 것이 아니다. 칼융(Carl Jung)은 이러한 인간의 정서적 위기를 개별화(Iindividualization)라고 불렀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중년에 오는 생리적, 신체적 변화는 부부관계 등 모든 상황에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그동안 가져왔던 생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재평가하고 새롭게 설정하고자 하는 본능을 갖게 된다.

청년세대는 힘겨운 현실을 딛고 미래를 보고자 하며, 중년은 인생 제2막을 새롭게 설계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익숙한 관행을 떠나 새로 열리는 낯선 지평으로 다가온다. 몸의 아픔을 바라보는 관점, 사랑과 이별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녀교육에 대한 마인드, 부부관계 등에 대한 재구조화를 생각하게 된다. 치열했던 지난 인생의 길(road)을 돌아보고,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길(way)을 가늠하며, 가슴 깊이 서늘하게 묻어나는 자신만의 길(path)을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졸혼은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졸혼은 2천년대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새로 생긴 낯선 개념이다. 생의 엄청난 타격을 불러일으키는 허리케인급 이혼보다는 부부가 거리를 두고 헤어져 살되 부부로서의 외형과 우애를 유지하며 사는 개념이다. 재산분할과 자녀문제, 양가 노부모에게 주는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고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의미에서 ‘현명한 이별’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이혼을 전제로 하여 부부의 연을 끊는 별거와 다른 개념이다. 졸혼은 일본의 유명작가 스키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내면서 일본열도를 흔들어 놓았고, 한국에서는 탤런트 백일섭의 졸혼 생활이 텔레비전에 방영되면서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만큼 졸혼의 역사가 깊은 나라도 드물다. ‘사랑방 문화’가 바로 조선판 졸혼이다. 부부가 처음부터 내실과 외실에서 따로 살며 내외(內外)간을 유지했던 양반과 달리 단칸방에서 평생 살 부비며 생존해야 했던 평민도 남성의 나이가 환갑을 지나면 마당 한켠에 사랑방을 짓고 분방을 한다. 이른 바 양반의 주거형태를 갖는 것이다. 뼈 빠지게 가난한 집도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하루 날 잡아 초가지붕 올리고 사랑방을 지어준다. 남자가 환갑을 넘었으니 ‘동네 어른 대접’을 해주는 것이다.

사랑방 졸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할머니를 중심으로 안방과 마루를 독점하면서 손주를 키우는 육아중심의 활기찬 경제가정을 이루고, 한편 환갑노인은 아침에 독상을 받고 산책을 하면서 무거웠던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노부부가 한발 떨어져 살면서 자신의 달라진 세계를 받아들이며 곧 다가올 외로운 노환과 죽음을 홀로 견디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마침내 죽음이 노부부를 갈라놓을 때 가족들은 임종 직전의 망자를 안방에 모신다. 저승길만은 부부가 함께 보냈던 안방의 냄새를 맡으며 떠나라는 뜻이다. 서로 보내고 남는 것이 그저 애틋하고 또 자연스럽다. 졸혼을 생활화했던 조상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내 할아버지도 고모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도 사랑방에서 황혼의 기간을 보냈고 모두 안방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생각해보면 왠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 우리의 졸혼에 대한 찬반 논리에는 역시 사회경제적 입장과 종교적 입장이 혼재되어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겪은 적은 없다. 모든 가족제도와 경제시스템이 생의 1차 근거지인 가족관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혼과 별거, 1인가구는 사회적 패배자이고 부적응 인간으로 분류된다. 독신은 아파트 특별분양과 세재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유산상속에서도 유무형의 불리함을 겪는다. 혼술과 혼밥이 늘고 있지만 5,60대 중년이 혼자 마음 편하게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극히 드물다. 중년남자가 혼자 산다고 하면 전월세도 얻기 어렵다. 잘나가는 동창회나 사교모임에서 부부동반을 할 때 혼자 사는 중년남녀가 끼어 들 틈은 없다. 자동으로 왕따가 된다. 우리만 이런 불편을 겪은 것은 아니다. 선진국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1인가구 문제를 경험했다.

독일과 북유럽의 1인가구 정책은 눈물겹도록 평등을 강조하고 실천한다. 주택분양과 세제 혜택, 월세 정책 등 모든 생활분야에서 혼족들이 불평등을 겪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성하여 시행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이뻐서가 아니다. 경제 때문이다. 기독교가 국교인 독일사회에서 이혼과 독신을 차별했더니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다. 혼자 살면서 사회적 차별을 겪다보니 혼족이 식당과 극장에 가지 않고, 백화점도 드나들지 않고, 부부문화 위주인 파티도 흥이나지 않았다.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는 나빠졌다. 마침 6.8혁명을 겪으며 유럽사회가 온통 낡은 인습과 보수적 종교관을 깨고 나올 때 독일은 가장 먼저 1인가구 혁신을 단행했다. 주말 부부파티를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면 그날 부부로 인정하는 ‘커플문화’로 바꿨고, 금기를 타파하고 자유로운 교제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사회문화를 조성하였다. 오늘날 독일과 유럽의 경제 활성화는 1인가구와 졸혼을 인정하는 출발선에서 만들어졌다. 낯선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1인가구가 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고, WHO 통계로 75세 이후 생존자가 세계 1위이다. 가족의 형태도 핵가족화를 넘어 1인가구 수가 30%를 넘어서고 있고, 황혼이혼은 이혼 비율 중 20%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새로 결혼하는 커플보다 이혼하는 커플이 더 많다. 혼자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가족형태만 고집하고 제도와 법령으로 졸혼과 혼족을 차별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은 여전하게 작용하고 있다. 개선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졸혼과 1인가구의 경제학을 선명한 정책으로 제시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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