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꽤 신선한 질문을 던진 취업준비생을 만난 적이 있다.
“면접 볼 때 연봉을 많이 받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자신은 계속 가난하게 살아왔고, 그래서 늘 돈에 대한 절박함이 있기에 취업을 한다면 꼭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로 가고 싶다는 거다.
면접 볼 때 입사 지원자의 금기 사항 중 하나가 돈 이야기다. 급여나 인센티브 같은 금전적 이야기를 구직자가 먼저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된다는 건 암묵적 불문율이다. 실제로 연봉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가 탈락했다는 사례도 있다. 물론 그 덕분에 취업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말이다.
《취업의 정답》의 저자 하정필은 회사에서 인사 담당자로 재직할 때 생산직 사원을 채용하기 위해 지방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본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대기업인 만큼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업 우수생들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바로 그 면접장에 한 여학생이 갑자기 뛰어들어와
자신에게도 잠깐의 시간을 허락해달라며 졸랐고, 그 바람에 한때 소동이 벌어졌다. 상황을 정리하고 자초지종을 들으니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지게 된 소녀 가장이었다. 손수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지만 늘 돈이 절박한 상황이고,
그 와중에 학업도 병행하다 보니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이번 면접에 추천받지 못한 것이 못내 속상해 실례를 무릎 쓰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 적힌 당시 상황 내용을 인용해본다.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서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지만 방과 후에 일을 하고 동생을 돌보며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면접을 볼 만큼 성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면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며칠을 울었습니다. 어제 밤새 현재의 상황과 저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면접관님께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렇게 용기를 내어 면접실의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저는 이제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말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한 면접관들은 이 학생을 채용하고 싶어 했다. 다만 다른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별도의 TO(채용할 자리)까지 만들어 특별히 채용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도 ‘그건 고졸 생산직이니까 가능한 일이지.’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한 취업사이트가 주관한 취업박람회에서 대기업 인사 담당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들려줬다.
자기 회사에 지원한 사람 중 너무 가난해서 대학 입학이 한참 늦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꼭 다녀야겠다!’라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 늦게나마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 생활 중에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마련했단다. 그러다 보니 학점이나 어학 점수, 자격증 등의 스펙은 부족했다. 대신 회사 면접을 볼 때 “누구보다 사회 경험에 대한 스펙만큼은 높다”며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과 노력, 열정과 다양한 경험을 면접관들에게 강조했다. 더불어 “가난에 대한 절박함이 강렬한 만큼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할 자신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결국 그는 스펙이 다소 부족함에도 최종 합격했고, 지금도 그 회사에서 누구보다 맹렬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취업하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취업 한다! 꼭 취업하고 말겠다!’라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절박함을 가지려면 긍정적 자극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부정적 자극도 필요하다. 인간은 무언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실 예감에서 오히려 더 큰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는다. 그러니 가끔은 자신을 향해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도 있다. ‘내가 만일 이 모든 걸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며 두려움을 조성해서 자신이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열등감으로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 ‘내게는 이런 이런 열등감이 있어.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무엇 무엇을 해야 해. 반드시 열등감을 극복하고 말겠어!’라고 다짐하는 거다. 때로는 자신을 구박했던 사람이나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한 사람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좋다.
위인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열등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사람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으로 인한 사회적 제약이 많았다. 이런 신분은 뛰어넘기 힘든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 제약을 뛰어넘은 사람도 많다. 신체장애나 지적장애 등의 장애를 극복한 사례는 지면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많다. 그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사람들 몇 사람만 무작위로 언급해보겠다.
헬렌 켈러, 헤르만 헤세, 서머싯 몸, 베토벤, 바이런, 에디슨, 이솝, 호메로스, 스티비 원더, 크리스토퍼 리브, 호세 펠리치아노, 샤르트르, 밀턴, 세르반테스, 루스벨트, 손자, 사마천, 무하마드 알리, 닉 부이치치, 스티븐 호킹, 고정욱, 이승복, 차인홍, 이희아… ….
우리는 각자 약점 하나씩은 갖고 있다. 가난이라든지, 낮은 학력이라든지, 외모라든지, 체격이라든지, 피부색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약점 속에서 삶의 절박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살을 빼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살을 빼고 싶다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살을 꼭 빼겠다는 강렬한 절박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절박함이 없기 때문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저는 절박함은 있어요.”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단지 마음만 먹고 있지 조금 더 절박하게 실행해봤는지는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절박하다면 행동할 수밖에 없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절박함이 없다는 뜻이다. 굵어 죽지 않기 위해 길거리에 마구 버린 잔반통까지 뒤지며 배를 채웠다는 김규환 명장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절박함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도 여태껏 해왔던 행동을 계속해나가려는 어리석은 경향이 있다. 많이 먹으면서도 운동하지 않고, 식이습관을 조절하지도 않으며, 막무가내로 늦은 밤까지 폭음하고 폭식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쯤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행동을 바꿔야 한다. 체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할 때 이미 몸 관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살을 찌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깡마른 체형이라면 누구보다 더 건강관리에 힘써야 한다. 내가 하려는 말의 의도는 단순히 살을 찌우고 빼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건강해지고 싶다!’라는 강렬한 열망이 있어야 그에 뒤따르는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담배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수 흡연자는 “나도 담배를 끊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금연에 실패하면 “담배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이들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황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 몸이 망가져 더 이상 담배 연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금연한다. 그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
그동안 담배를 피웠던 죗값이 어떤 형태로든 흔적으로 남기 때문이라고 의사들은 지적한다.
주변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눈치를 주고, 스스로도 깨끗하지 못하다 느끼고, 식욕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졌다 싶을 때 그때라도 금연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꼭 끊어야겠다!’라는 간절함이 없으면 ‘다음에 끊겠다.’라며 결심을 미루게 된다.
사실 금연은 ‘담배를 끊겠다.’라는 다짐 수준으로는 어렵다. ‘건강해지고 싶다!’라거나 ‘가족에게 좋은 냄새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식의 좀 더 궁극적인 목표가 내포돼 있어야 한다. 결국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식의 간절한 목표가 있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성공이나 행복도 마찬가지다. “성공하고 싶다!”라는 말 정도로는 성공할 수 없다. ‘내 영혼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라는 강렬한 다짐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만 늘어놓는다고 행복해질 수는 없다. 행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그에 뒤따르는 노력이 없다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성공한 후에도 ‘성공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 좋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나는 안전하다’고 위안을 삼을 게 아니라, ‘나도 실직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성공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모든 걸 다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박적으로 가지고 있다.
혹시 현재의 삶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가? 삶에는 어느 정도의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절박함이 없다면 목표 의식도 없어지고, 실행력도 떨어지고, 긴장감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진다. 게다가 쥐뿔도 없으면서 젠체하면 자만심이나 교만함만 커진다. 그렇게 되면 최악이다. 취업할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으면서, 무작정 잘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시간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나도 절박함이 필요하지만 절박함을 느낄 수 없다.”라는 어떤 청춘의 호소도 있었다. 그럴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리 비교적 순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 삶에 절박함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더 나아지고 싶다!’라는 열망이라도 품어서 꿈을 이루기 위한 간절함을 만들어내야 한다 .
절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학습해야 한다. 사람은 배움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때 자극이 온다. 고만고만한 사람만 만나면 고만고만한 수준에만 그친다. 그런 사람들에게
서는 자극도 없다. 성공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또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된다. 나보다 어리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보는 것도 좋다. 어쩌면 그 어떤 교육보다 더 강렬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극한 상황까지 도전해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적당히 살아서는 그런 단계에 이를 수 없다. 포근한 일상으로부터 과감하게 탈출을 시도해보자. 그래야 실패를 하더라도 일상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여행도 좋다. 자연에서 겸허함을 배울 수 있으니.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된다.
당신 삶에서 꼭 이루고픈 간절한 목표부터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