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마무리의 지속, 시종여일 [천기덕의 천기누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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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마무리의 지속, 시종여일 [천기덕의 천기누설](53)
  • 뉴스앤잡
  • 승인 2023.12.2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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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유종(有始有終) 여시여종(如始如終), 늘 시작하는 마음으로 고전의 지혜를 되새기자.

 

시작이 있었으니 마무리가 있다. 일단 제대로 시작하면 절반은 이룬 것이란 말은 철학자 플라톤의 일갈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껏 임하면 이미 반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done pretty much better half of any work). 그러나 한편 태어나고 성장하고 평생 학습하는 인생사에서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배워서 익힌 행동이 소기의 결과를 낳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치 있는 삶은 원래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로 자위해 본다.

 

쇠털같이 많은 날, 매일 매일이 새롭고 좋은 선물이다. 그렇다고 무제한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담대한 도전을 할 기회가 있을 뿐이다. 도전과 성취는 아주 좋은 <금란지붕>같은 단짝이다. 그렇지만 좋은 친구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첩경은 내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밥먹고 술마시는 ‘주식친구(酒食親舊)는 친구의 범주에도 들지 못한다고 한다. 얼굴만 봐도 알아차려 걸맞는 음악을 연주하고 헤아릴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수준급 친구란다.

 

어느날 나는 우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외우자(畏友子)’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진정한 벗, 이로운 벗은 만날 때 마다 발전과 성장이 괄목할만하여 만나기가 두려울 정도의 친구란 말로 성인급인 ‘자’자를 붙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이란 하루, 절대적 시간인 크로노스적 개념으로는 똑같지만 상대적인 카이로스적 시간은 다르다. 물리적 시간만으로 백세인생을 말하기엔 허점이 너무 크다.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3가지란 말이 있다. ⓐMemento mori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태어난 모든 생물은 죽게 되는 것이 섭리다.) ⓑCarpe Diem (‘오늘을 잡아라’) ⓒAmor Fati인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이다. 인생을 역산하면 더 알찬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주자 십후회나 도연명의 잡시, 수많은 시조에서 광속 시간의 가차 없는 흐름을 언급한 것은 좀 더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조언과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인생은 편도여행 같아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일방통행로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고 매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경주하고 그 시간의 연속된 과정을 사랑하면 원도 한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니 잘 깨우치고 충실하게 살라는 충고가 고맙다. 지금력(只今力)과 순간경이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을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개념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로 지금은 현금, ‘Cash is the king’ 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내일은 희망이요, 약속이고 보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고도우를 기다리며’처럼 또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관성적 사고나 우매하고 미련한 기다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기다림은 어울림에 대한 설레임을 주지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 매정한 시간의 속성이다. 때가 되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그 기대를 저버리게 되어있다. 단지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란 막연한 관성적 사고로 위안을 가질 뿐이다.

 

덕화만발(德華滿發)처럼 삶이 덕과 영화로 꽉 차면 소기의 희망을 이루는 바람직한 삶이 된다. 생즉동(生即動)이요 동즉도(動即道)란 말처럼 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이고 일을 하면 마땅히 인간으로 살아야 할 기본인 함께사는 관계형성의 도량을 가꾸는 인간다운 과정이다. 그 급소인 공감과 협업은 바늘과 실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그 바탕이 신뢰로 튼실하게 다져져 있어야 한다. 나는 산에 오를 때 늘 도성을 점지한 간절한 염원, 오상(五常)을 생각해 본다.

 

인의예지의 4덕에 그 총화로서의 신(信)을 보태면 국태민안의 주인공인 구성원들의 바람직한 삶의 급소란 생각을 해 본다. 신뢰가 얼마나 고귀한 사회적 자본인가. 나는 나를 믿는가 자문해 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지를 보내는 5가지 요소 중 하나가 신뢰와 화합이다. 신뢰가 없으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그야말로 무신불립(無信不立) 이다. 믿음이란 신뢰 자본은 막강한 힘과 가치를 창출하는 샘물을 뿜어내는 원천源泉)과 같다.

 

거울을 보면서 우리는 성찰을 한다. 무한 반복과 복제의 힘은 가공할만하다. 아인슈타인이 발명한 복리의 법칙처럼 굳은 마음가짐으로 다지며 반복 수행하는 축적은 기하급수적 결과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더욱 배가되는 기적을 낳는다. 시작과 초심의 중요성이 그 단초이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란 성경의 말씀처럼 좋은 시작은 좋은 경작으로 보람찬 결과를 낳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1년 8,760시간 정성을 쏟는 연속성을 견지하자.

 

올 한해 애초에 목표한 것들을 이루었는지 되짚어 볼 시간이다. 또 때때로 중간점검에서 발견한 더 나은 시작을 준비하고 실천방안을 궁리할 시간이다. 회계연도의 시작인 1월 1일 날 하면 너무 늦다. 또 계획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실천은 처음부터 좀 늦어지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연초계획을 실천한 사람들은 겨우 7% 정도라는 것이 검증된 정설이다. 왜 그럴까. 너무 계획만 거창하여 실천은 삼일천하에 그치기 쉽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둘이서 하나 되는 정신일도의 21일이 부부의 날이기도 하지만 알이 부화하여 새 생명 탄생에 걸리는 시간이다. 꾸준히 일관되게 21일쯤 오매불망 지속하면 습관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래도 열리지 않으면 66일쯤 후회없이 지속해 보자. 돌이킬 수 없는 3가지가 있다. ①시위를 떠난 화살, ②흘러간 시간 ③내뱉은 말이다. 불가사의 같은 한국의 궁술, 양궁의 쾌거는 세계사에 빛난다.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지존의 독보적 성과를 내 왔다.

 

활쏘기에 ‘집궁팔원칙(執弓八原則)’이란게 있다.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에 “發而不中 不怨

 

勝己者 反求諸己而已(발이부중 불원승기자 반구제기이이)”라며 “궁술대회에서 화살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패배하면 승자를 원망하지 말고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이라 “군자는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모든 잘못을 남탓으로 돌린다”고 했다.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편(篇)에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행유부득자 개반구제기)"라 하여 "행하고도 기대한 것을 얻지 못했을 경우 항상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라”라고 충고한다. 생각의 방향인 각도와 범주를 제대로 진단, 성찰하고 근본을 파악하여 목표를 적중시켜 이루어졌는지 점검하고 옳은 방안을 용의주도하게 모색하자. 시작은 곧 되돌아갈 버스와 전철의 종점인 셈이다. 끝은 곧 시작으로 보람차고 복된 날들을 알차게 이어가자.

 

흘러간 시간, 생자필멸의 길목에서 고전의 지혜를 되새김 해본다.

늘 새로운 시작의 경건한 마음을 중단없이 지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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