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수는 일상 속 작은 것들에 숨어 있다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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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수는 일상 속 작은 것들에 숨어 있다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44)
  • 뉴스앤잡
  • 승인 2023.08.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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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깨달음의 정수(精髓)에 도달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최고의 도(道)만 추구하며 사는 사람은 결국 그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한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정작 자신은 깨달음이 없으면서 깨달았다 말하고 행동거지는 엉망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깨달음을 듣고도 코웃음 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유용한 지혜도 소용이 없다. 실제로 인간 삶의 허무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선지자들이 소수 있지만, 그에 반해 그 과정에서 자기 삶 
을 오히려 파괴해버린 평범한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은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겠다며 어느 날 가정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부모도 버리고, 홀로 정진 길에 오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이혼 후 2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을 한 다음, 계룡산에서 수행을 통해 득도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현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깨달음을 통해 종교에 귀의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 공헌한 것도 아니다. 조그만 월세방을 전전하며 인간 삶의 정수를 찾기 위해 수도하러 다닌단다. 지극한 행복에 이르렀다고 말하던 그가 어느 날 내게 일자리 없느냐고 물었을 때는 측은함마저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는 깨달음을 얻어 홀로 행복하고, 홀로 천국에 가고, 홀로 극락왕생한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멋진 일만 하려고 한다. 남들 보기에 폼 나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 하고, 폼 나는 부서에서 폼 나는 직무만 맡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보잘 것없어 보이는 일들을 하찮게 여긴다.


하지만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여겼던 부분 때문에 베어링은행이라는 거대 기업은 100년의 역사가 무너졌다.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는 조그만 고무 패킹인 오링의 결함을 무시했다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런 사례는 조직, 시스템, 사람을 막론하고 무궁무진하다.


반면 사소한 부분을 바로잡음으로써 뉴욕의 범죄율을 현격하게 줄인 사례도 있다. 1980년대 뉴욕시는 연간 60여만 건의 중범죄에 시달리고 있었고,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1984년부터 지하철 차량의 낙서를 지우는 작은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를 두고 당시 뉴욕 시민들은 엉뚱한 곳에다 시의 예산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며 뉴욕시 정책을 비난했다. 


낙서 지우는 시간에 흉악한 중범죄를 단속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후 낙서 지우기 운동이 끝났을 무렵 뉴욕의 지하철 중범죄 사건은 무려 75%나 감소해 있었다. 이는 마이클 레빈이 쓴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이런 현상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 부른다. 어떤 건물에서 깨진 유리창을 처음 본 사람들은 ‘왜 깨졌을까?’ 걱정을 한다. 
하지만 깨진 상태가 계속되면 유리창이 더 깨질 뿐 아니라 그 건물 전체를 지저분한 것으로 인식해 더 더럽게 사용하게 되고, 결국 건물 주변을 넘어 도시 전체가 슬럼화된다는 내용의 이론이다. ‘나쁜 나비효과’라고 봐도 좋겠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라고 큰소리쳤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나 역시 그렇지 못한 우를 많이 범했다. 학교 다닐 때나 직장 다닐 때나 내가 맡은 일을 사소한 일이라 여기며 소홀했기에 실패를 거듭하지 않았나 싶다. 유명 강사(?)가 된 지금도 실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말이다. 가족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에 수도권 대학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종일 집에서 작업할 때였다. 그때는 아이들 밥도 해주고, 설거지도 하고, 아이들 학교 가는 것도 챙겨주고, 집 청소도 했다. 몇 번 할 때는 집안일도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반복되고 집안일이 점차 많아지니,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에서 살아생전 법정 스님의 말씀을 듣게 됐다. 젊은 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사건에 적극 개입하며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중 청년들이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무려 17년간 세상을 등지고 송광사에 머물며 혼자 기거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낀 동시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법정 스님은 오로지 혼자 밭을 갈고, 밥을 짓고, 음식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옷 다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는 그 모든 일을 수행이라 생각하며 17년이나 홀로 지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그게 스님들의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신은 1년이라도 그렇게 지낼 수 있겠는가. 또 법정 스님은 자신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자 대중을 피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게 홀로 지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으로까지 칭송받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요리 몇 번 하고, 설거지 몇 번 하고, 청소 좀 했다고 투덜거리기나 했다니, 옹졸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거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작은 집안일을 하더라도 ‘이 일은 중대한 일이다. 나는 지금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가족 모두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그게 좋은 습관으로도 자리 잡았다.


“그건 당신 집안일이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겠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말을 꼭 해야겠다. 그런 마음 자세가 내가 하는 사회적인 일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걸 말이다. 집에서 하는 일뿐 아니라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특히 상담을 통해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지금 고귀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이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진솔한 마음으로 대하자!'라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성공한 삶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빨리 가려고 핵심만 좇지도 삶의 정수만 바라지도 말자. 일상의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기울이고, 필요하다면 전력을 다해보자. 그런 사람이라면 언젠가 분명, 작은 일을 의미 있는 큰 일로 발전시키면서 원하던 것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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