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을 재생산하는 사회가 되어선 안된다 [신의수의 진로이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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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을 재생산하는 사회가 되어선 안된다 [신의수의 진로이음](40)
  • 뉴스앤잡
  • 승인 2023.06.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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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속적으로 일하기를 원한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노력하는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먼저 사업주나 그 외 구인자가 원하는 능력과 역량의 진로자본을 갖추어야 한다. 사업주가 원하는 지식과 실무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취업하고자 하는 일에 얼마나 적합한 진로자본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리는 전략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모의 재산과 아빠찬스, 엄마찬스와 같은 진로자본에 따라 개인의 진로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을 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크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개인의 노력에 의한 소득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과거의 축적된 부와 그로부터 얻는 수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일생동안 노력을 한다면 본인세대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1.8%에 불과했다. 지난 2009년 35.7%였던 것과 대조된다.

수저 계급론이라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처럼 확산되는 사회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저계급론'이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가면서 이것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로자본 불평등 문제가 개인의 진로발달과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회 이동성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는가’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상태는 지니계수와 분위별 상대 소득 비중, 소득 점유율, 상대 빈곤율 등을 우려할 때 선진국 평균에 가깝다”며 “‘헬조선’이나 ‘금수저’ 주장의 근거는 약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다만 외환위기 이후 계층 이동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고령층을 중심으로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영 한경연 부연구위원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세대 간 소득탄력성 비교 결과를 근거로 “한국의 소득 이동성은 OECD 17개 회원국 중 8번째로 높다”고 했다.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은 부자(父子)간 소득의 상관관계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 이동성이 낮다는 뜻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소득탄력성은 0.29로 뉴질랜드(0.29), 스웨덴(0.27)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본(0.34), 미국(0.47), 독일(0.32)은 우리보다 높았다.

이러한 결과들과 다르게 요즘 신문지면을 덮고 있는 지도층 자녀들의 특혜는 국민들이 느끼는 진로경로에 있어서의 이동기회의 감소가 실제보다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진로경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것은 사회 활력 제고와 사회 통합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수저 계급론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소득 분배정책에 대한 국민 체감도가 매우 낮다는 방증이다. 노력한 만큼 댓가가 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사회제도 개혁을 통해 소득 및 진로 이동성이 높은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진로자본이 소진되거나 생애사건으로 인해 급격히 손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축적된 진로자본이 완전히 소멸되거나, 진로자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거나 늘어간다면 우리사회는 보다 공정한 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진로발달 단계에서 발달과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현재와 다음의 진로단계에서 직면해야만 하는 발달과제들을 알아차리는 것들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개인이 진로를 추구할 때 입직, 창업, 승진, 전직 등 진로경로를 개척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 새롭고 이질적인 상황들에 노출된 경우 이에 적응하는 능력을 요구하고 새로운 노동시장에서는 많은 융통성과 유연성, 그리고 다양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회자본, 경제자본, 문화자본 등 진로자본은 자본들이 서로 영향을 주며 축적되고 활용된다. 예를 들어 문화자본은 경제자본이 많을수록 그 축적이 용이하고 경제자본이 충분할수록 사회자본의 양과 질은 달라진다. 우리는 진로와 관련된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진로자본의 축적을 통해 삶의 가치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엄마찬스 아빠찬스에 순응하거나 금수저, 은수저를 그저 바라만 보면서 무력감을 재생산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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