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 하는 것? 일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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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 하는 것? 일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28)
  • 뉴스앤잡
  • 승인 2020.09.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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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힘들지만 더불어 행복을 나누는 회사를 생각하며

“입사하고 2년 정도 지나니 생산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은 이제 쉬웠습니다. 반면 코로나로 인해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아팠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것은 동남아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전후 사정을 좀더 알고 싶어 우리 GYBM 미얀마 출신이 취업한 사람과 연락을 취해 보았다. 공장 방역 문제와 주문량 감소로 인한 직원 감축의 고통이 크다고 한다. 금년 2월까지만 해도 일만 잘하면 되었는 데 반해 공장이 멈추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일을 말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감축하였는지?”라며 물었더니 3,000여명 직원의 규모였는 데 지난 6개월동안5% 정도만 유지한다는 것이다. 2년밖에 안된 직원 신분이지만, 공장 책임자 같은 말은 남길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 사이에 현지직원들과 정이 들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회복되는 기미가 보여 다행입니다. 전무님!”라고 한다.

연수받을 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듯 보였던 길영재 대리(가명)였다. GYBM 미얀마과정 4기 출신으로 지난 2017년 8월부터 10개월간 한국과 미얀마 현지에서 집중 연수를 받았다. 이듬해 5월에 지금의 생활용 경공업제품을 주문자상표제작방식(O.E.M)으로 제조 공급하는 ‘주식회사 KP(가칭)’에 입사하였다. 우리가 들으면 익히 알 만한 글로벌 브랜드제품들의 생산업체이다. 지금은 직원 150여 명에 한국인은 본인을 포함한 5명의 관리자가 있다.

정상 상황이었으면 지난 4월 미얀마 전통 축제인 ‘띤잔(물축제)’의 휴무기간동안 한국도 다녀갔을 것이다.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코로나 이전의 좋은 경험 하나만 떠올려보자. 고비를 지나면 분명히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니 희망을 가지자”는 의미로 사건을 듣고 정리하였다.

코로나사태 직전인 지난 1월에 본사 영업부에서 긴급 오더(주문)가 들어왔다. 주문량을 따져보니 약 20일 정도면 생산, 출고가 충분한 기간이었다. 문제는 원부자재들이 열흘이나 늦게야 준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단기간이라 탄력성이 없는 데다 절반이 잘려 나갔다. 잘잘못을 차치하고 정말 난감했다. 일정을 최대한 조정하고 실어내는 물류일정도 항공운송을 적용하며 따져보니 채산성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초비상이다”로 선언하고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해 나갔다. 5개의 포인트로 압축하여 2주전부터 작은 오차도 없도록 준비해 나갔다. 라인을 조정하며 실험하며 예측하고 실전 연습도 병행했다. 불만의 소리도 들렸다. 관리 책임자로서 해결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며 차분히 챙겨 나갔다.

첫째, 생산 라인을 70% 늘렸다. 그러나 정작 원자재의 선행작업에 필요한 장비가 부족하였다. 외부에서 임대하며 운전 기능인력도 추가로 투입하였다.

둘째, 가동 시간을 늘리고 시간당 생산성 목표도 높였다. 약 30%를 상향하는 타겟을 설정하니 현지인 매니저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앞 달에 했던 초과(오버타임)근무가 바로 이어져 너무 힘들다고 했다. 교대 편성 시스템을 새롭게 조정했다. 문제는 숙련도였다. 사전 연습을 위해 별도의 라인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봐가며 하나하나 훈련해 나갔다.

셋째, 작업물량의 바이어가 달라 2가지 제품이 20:80으로 섞여 있었다. 전환하는 단계에서 상당한 불량(로스)이 발생될 위험성이 예상되었다. 직원들의 피로도까지 예측하며 작업 순서를 정했다.

넷째, 생산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했다. 비상상황 돌파에 직원들의 힘을 모은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었다. 향상된 수익성으로 인센티브 보상을 하는 것으로 했다. 상사들의 믿음과 위임이 큰 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평상시 대비 기계장비 가동에 과도하게 부하가 걸릴 가능성이었다. 짧은 시간의 로스가 전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이었다. 장비 기술자를 가동시간 내내 상주시켰다. 별 일은 없었지만 직원들의 안정감에 크게 작용을 했다.

길대리가 막힘없이 말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지난 2년동안 크고 작은 문제 해결의 경험의 축적이라고 한다. 이번 건은 위기의 종합판이라고도 했다. 입사 후 단기간에 회사와 제품에 적응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험한 1년 정도의 직장생활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라 기계나 생산, 봉제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GYBM 연수시간에 배운 생산관리, 품질관리의 기초 지식만으로 웬만한 업무는 다 해 낼 자신감이 붙은 것은 길대리의 큰 잠재력 때문이었다.

소감이 있으면 정리해 보자고 부탁했더니 몇 가지를 말했다.

“한국에 있으면 눈으로만 볼 고급 브랜드 제품을 직접 만들다보니 많은 공부가 됩니다. 앞으로 또다른 나의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미얀마를 후진국이라고 하며 많이 피하는 것을 보는 데, 솔직히 공장 라인에서 일하는 시간에는 선진국, 후진국의 감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쓸 데 없는 것에 눈길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좋습니다. 놀거리가 별로 없어 일요일은 양곤시내로 나가 즐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품 속성상 여성이 많은 데 미얀마 사람들의 성정(性情)이 착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한 편입니다. 뽑아서 필요한 기능을 가르치면 제 몫하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손놀림이나 세밀한 부분은 조금 떨어지지만 생산성에 적절한 급여를 주고 그 돈으로 생활을 꾸리는 것을 보는 것은 작은 보람입니다.”

“돌이켜 보면 학교 졸업하고 특별히 할 수 있는 것 없이 느꼈던 취업절벽의 답답함이 새삼스럽습니다. 특히 일자리 차원에서 한국에서 들려오는 후배들의 한숨소리는 남의 일 같지가 않으며 안타깝습니다.”

연수시간 동안에 필자가 길대리에게 느꼈던 든든함이 배어나는 말이었다. 마음으로 응원한다. “잘 이겨 나가자. 미얀마 사람들과 나누며 미래를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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