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보다 ‘생활(life)’에서 만들어진 기회 [박창욱의 글로벌 성장통](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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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work)보다 ‘생활(life)’에서 만들어진 기회 [박창욱의 글로벌 성장통](27)
  • 뉴스앤잡
  • 승인 2020.08.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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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취업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우회전략의 묘수

7개월 전에 인도네시아 반둥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2월말에 GYBM연수생의 교육장이 있는 인도네시아 반둥에 소재한 UPI(인도네시아국립교육대학교)를 찾았다. 강의와 격려가 목적이기에 시간을 내어 연수생 25명과 저녁식사를 하려고 반둥 시내의 한국 식당을 찾았다. 조금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는 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3-4명이 앉아 술잔이 제법 익어간 자리에서 나를 보고 “전무님! 이쪽으로 오세요” 라며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작년에 연수를 마쳤던 원진혁(가명, 강원대 화학공학과)이었다. “진혁씨! 오랜만이다.”라고 인사를 나눴더니 옆자리 앉은 분을 나에게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대표님! 대우세경연의 박창욱 전무님입니다. 인사 나누시지요”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인근 지역에 진출한 한국 회사의 공장 법인대표 2분이었다. 50세 전후로 보이며 현지에 온 지는 모두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당장 궁금해졌다. ‘새파란 신입사원이 어떻게 저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까? 이게 뭐지?’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중에 연수생들이 들어와 저녁 식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무심하게 지내던 중에 지난 5월에 원대리가 연수 동기생과 서울에서 결혼식이 있어 다시 만나 잠시 사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기발나고 재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우연히 반둥의 한인축구동아리 총무를 맡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세상에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무님! 이런 것도 글로벌 성장통의 얘깃거리가 됩니까?” 라고 한다. “와우! 대박이다”라며 자세히 듣노라니 도리어 내가 한 수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자리의 어른들은 원대리가 취업한 회사의 인근 공장 법인대표들이자 축구팀의 원로라고 했다. 취업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그분들과 자연스러운 저녁식사 자리? 상상이 잘 안되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원대리에게 보내는 호감의 눈길은 더구나 이해가 안되었다. 

원대리는 GYBM 인도네시아과정 3기로 지난 2017년 8월부터 이듬 해 5월까지 연수를 받고 ㈜KSG(가칭)에 취업했다. 회사는 인도네시아 3번째 도시인 반둥(BANDUNG)에 있다. 이 일대는 섬유, 봉제와 가공 등을 주로 하는 한국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곳이다. KSG는 섬유에 사용되는 첨가물을 생산하는 정밀화학업체이다. 원대리는 입사 후에 꾸준히 업무를 늘려 지금은 영업과 영업관리, 거래처와 수준관리 등의 업무에다 현지 직원들 교육도 맡아서 하고 있다. 처음 입사하며 생활과 업무 적응에 한창 애쓰고 있을 때에 거래처 직원이 “원대리님! 축구 좋아하세요? 반둥 한인축구팀에 가입하세요”라고 하였다. 대학 때 운동도 좋아하고 나름대로 붙임성이 조금 있던 터라 반가운 제안이었다. 일요일 아침의 모임에 가보니 인근 지역 한국 공장에 계신 분들 모두가 모인 것 같았다. 매번 30명 정도가 모였고 가입 인사를 하니 ‘영업하려고 왔구나’며 곱지 않은 시선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대학 1학년 때 축구동아리에 들어갔던 때를 떠 올리며 어울렸다. 마침 GYBM 연수 중에 듣고 인간관계의 대원칙으로 마음에 새겼던 ‘4G1T’가 생각났다. 

『GIVE, GIVE, GIVE, GIVE & TAKE』 
현지생활 연수로나 나이로 봐도 제일 막내격이니 철저하게 낮추면 뭘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나니 ‘총무’를 맡으라고 했다. 그 때부터 축구장 예약, 안내 문자 발송과 참가 확인, 먼저 나와 용품들 챙기기, 뒤풀이 장소 예약 등을 하나하나 챙겨 나갔다. 잘 보였는지 돈을 관리하는 일도 주어졌다. 회비 관리, 비용 지출, 결산 보고 등에다 크고 작은 경조사를 챙기며 경조금이나 화환도 챙겼다. 일이 많아지고 뛰어다닌 노력만큼 ‘수고가 많다’면서 다가오는 시선이 따뜻해졌다. 
같이 축구하는 분들의 직급이나 나이를 넘나들며 어울리는 기회가 많아졌고 필자가 방문한 식당에서의 일도 그런 연장선상의 상황이었다. 식사를 같이 하던 그 분들이 “전무님! 좋은 친구들 많이 키워 보내줘서 감사합니다. 원대리같은 친구들이면 수십명을 보내도 다 자리 잡을 것입니다. 김우중 회장님의 별세소식이 안타깝습니다” 며 인사를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이 ‘작은’ 일을 계기로 영업하기도 쉬워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따뜻하게 격려해 준다고 한다. 지난 5월에 동기생과 결혼한다고 알렸을 때도 내 일같이 좋아하며 결혼생활이나 집 구하는 문제 등 생활 전반에 대한 조언을 아낌없이 받았다고 한다. 우리 GYBM 동문들에게 현지에 적응하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1년간의 어려운 연수를 마치고 현지 한국기업에 입사하면 적지 않은 인원이 초기에 좌절을 한다. 현지에 먼저 진출한 상사나 선배들의 후배들에 대한 무례함(?)때문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분들도 외롭고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동아리 선배, 동네 형님, 집안의 삼촌을 대하는 친근감으로 다가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소감을 물었더니 처음 도전하는 후배들, 이미 연수 받고 있는 후배들에게 각각의 말을 남겼다. 그대로 옮겨 본다.
“먼저, 인도네시아 취업의 큰 장점은 비중있는 업무에 신입 및 젊은 직원들을 거침없이 투입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빠르게 실력을 키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 경험이 적고 조언을 구할 수 없다면 기회를 쉽게 놓칠 수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잘 맞고 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경험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착실히 성장할 기회를 찾아 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왕 시작했다면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의 조언이 중요합니다. 같은 생활을 경험한 GYBM 선배들의 조언과 해당 업계에 오랫동안 종사하는 분들의 생생한 경험 이야기입니다. 업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이해도도 높일 수 있습니다. 축구팀 활동은 인도네시아 생활에 요령이 생기기까지 실질적인 정보를 취득하는 데 가장 적합한 루트였습니다. 정보의 부족은 불안감과 고립감만 키우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워크(WORK)와 라이프(LIFE)의 완벽한 균형이자 선순환 고리였다. 
‘아차’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약속이 기억났다. 고생하고 있는 우리 GYBM 4개국 팀장들을 집으로 모셔서 식사를 한번 하자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내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식으로 회식을 하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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