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에 이력서 돌리는 노배우를 보면서 [김상엽의 지피지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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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에 이력서 돌리는 노배우를 보면서 [김상엽의 지피지기](5)
  • 뉴스앤잡
  • 승인 2020.07.2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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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73세를 맞은 전직 배우 한지일씨 사연이 최근 방송에 알려져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아마 40대 이상이라면 이 분의 젠틀한 외모와 한때 영화제작자로 유명했던 과거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배우로 영화제작자로 크게 성공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투자실패로 100억대 재산을 다 날리고 지금은 생계를 위해 호텔 웨이터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살아가고 있었다.

한 때 부귀영화를 누렸던 분이라는걸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그는 자존심과 명성을 내려놓은 듯 보였다. 지금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끊길 때 마다 A4로 작성한 수북한 이력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퍼마켓, 가구점, 주유소 등을 직접 다니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나에게 ‘잡’을 달라며 나를 뽑지 않더라도 꼭 연락을 달라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이 교차했다.

이 분을 보면서 직업에 대한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지, 돈이란 무엇인지, 인생은 무엇인지 계속 물음표를 갖게 되었다. 만약 내가 73세의 화려했던 전직 배우였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면서 직접 이력서를 돌릴 수 있을지 자문해 보기도 했다. 방송을 보면서 무엇보다 모든걸 내려놓고 살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을 나와 직업강사를 하고 있지만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관두고 강사를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으나 3년 이상 살아남는 사람은 5%도 채 안 된다. 특히, 실패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내가 S그룹 출신이고 K대 출신인데 그거 받고 일 못한다거나, 그런 강의는 할 수 없다는 식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한지일씨는 클로징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과거에 화려한 배우였다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나에게 밥 먹여 줍니까. 지금은 지금일 뿐입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 사회경험이 없고 나이가 어린 학생들에게 진로와 직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한지일씨의 사연은 나를 포함해 모든 세대가 한 번은 귀 기울여봐야 할 진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30대 후반까지는 옮길 직장을 미리 정하지도 않고 덜컥 그만두던 혈기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는 아직 젊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충만해 있었고 그런 에너지를 바탕으로 100대 1에 가까운 경쟁을 뚫고 대학교 직원 공채에 입사하기도 했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면서 그 때의 용기와 패기도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 20대 기대수명이 100세라고 한다. 미래에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요즘 분위기에 비춰보면 정년퇴직 나이 60세도 한참 활동할 나이지만 노배우의 마지막 열정을 보면서 돌아볼 수 있는 진지한 기회가 되었다. 매장관리는 키오스크가, 고객상담은 인공지능이, 생산현장은 스마트공장으로 변신한지 오래됐다. 기계부품을 만드는 지인의 한 중소기업은 50명이 할 일을 로봇과 스마트공장을 도입해 20명이 거뜬히 해낸다고 한다. 급변하는 세상,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정답이 없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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