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학에서 대기업 취업하는 10%의 별종들 [김상엽의 지피지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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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에서 대기업 취업하는 10%의 별종들 [김상엽의 지피지기](3)
  • 뉴스앤잡
  • 승인 2020.03.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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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예술대학으로 유명한 모 대학 한 학기 진로수업을 맡은 적이 있다. 수업에 들어가면 모든 계열 학생이 들어오는데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건 커다란 악기나 화구통을 들고 오거나 딱 봐도 무용학과 학생이라는걸 알 수 있는 옷차림의 예술대학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수업전이나 휴식시간에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스킨십을 하는 편인데 왜 진로수업을 신청했냐고 물어보니 학점도 있지만 내가 가야할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어 왔다는 것이었다.

대학까지 예술을 해왔다면 고교이전부터 재능을 발견하고 예고나 레슨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무작정 따라가는 케이스가 많다. 그 중 피아노 전공자가 가장 많아 인상적이었는데 수업 말미에 졸업 후 뭘 하고 싶냐고 물으니 유학 후 교수, 학원 개업, 승무원, 대기업, 방송사 PD를 희망한다며 자랑하듯 말하는 걸 보니 평소 진로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온 그들 대부분이 전공과 거리가 있는 진로를 언급한 건 좀 뜻밖이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음악과 미술, 악기는 정말 좋은데 미래의 직업으로 가질만한 매력이 부족하고, 더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예술적 재능은 있으니 직업과 취미와의 선택이라면 그게 꼭 직업일 필요는 없다.”고 매우 현실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막상 전공 수업에 들어가면 교수님들은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한다.”며 다른 곳을 생각할 여유와 분위기 형성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예술분야 외 다른 세상을 구경하러 진로수업에 왔다며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말하는 걸 보고 참 흐뭇했었다.

평생을 가져갈 수 있는 예술적 재능을 보유한 건 정말 행운이지만 아직 저학년인 만큼 재능을 활용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련 직업을 찾아보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서 학원 개업을 생각중인 학생에겐 기본적인 회계자격증과 창업교육을, 승무원 준비생에겐 외국어 준비와 유리한 활동에 대해, CJ그룹 입사가 꿈이라는 학생에겐 음악적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E&M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했다. 방송사 PD를 꿈꾸는 학생에겐 음반사나 클래식채널 등 음악전문 방송채널과 YAMAHA, KAWAI 같은 글로벌 악기제조사, 홈쇼핑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했다.

대부분 부모님의 권유로 한 길만 바라보며 청년기를 보내온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걸 알려줬더니 정말 관심 있게 몰입하는 분위기였다. 그중 피아노를 전공하고 대기업과 방송사 PD를 꿈꾸던 한 여학생은 그토록 원하던 CJ E&M 공채에 연거푸 실패하더니 지상파 모 방송사 작가를 거쳐, 명성이 자자한 독일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석·박사과정을 밟던 중 아르바이트로 잠시 일하던 독일 최대 선사에 취업해서 화주와 선사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며 고객사 초청 행사에서 피아노 실력을 마음껏 뽐낸다고 한다.

진로는 이런 것이다. 진로를 선택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A라는 전공을 했다고 꼭 그 계통으로 가야한다는 규정을 짓지 말고, 특히 저학년일수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내비게이션의 탐색처럼 만약 대안 경로 A,B,C가 있다면, 우리는 매번 관성적으로 평소 익숙한 길만 가려하지만 다른 길도 가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로마다 본인의 적성과 성향에 잘 맞는 길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을 만나보면 더 자랄 수 있는 날개를 갖고 있는데 그걸 발굴해주는 경험 많은 멘토를 만나지 못했거나 펼쳐볼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거나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다. 필자가 직업교육 강사로서 바라는 건 음대생이 악기제조사의 마케터로, 사범대생이 교육업체의 기획자가 될 수 있는 그런 풍토를 만들고 발굴해 연결시켜 주는 직업적 가치창출이다.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두지 말고 도전한다면 분명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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