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밑지나 길게 보고 가자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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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밑지나 길게 보고 가자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12)
  • 뉴스앤잡
  • 승인 2020.02.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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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의 자재 위기에 온몸으로 대처

“이과장님! 혹시 내일 저녁까지 기름 좀 넣어 줄 수 있겠어요?”라며 다급한 목소리이다. 일과를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드는 데 핸드폰으로 들려온 통화내용이다. 베트남에서 우리와 거래하는 대기업인 ‘A사’의 담당 차장님 전화다. 거래하는 여러 품목 중에 한 번도 거래한 적이 없는 자재였다. 뭔가 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재는 주문에 따라 날짜를 맞춰서 한국에서 해상운송으로 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까지?’ 정신이 확 든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운송이 문제다. ‘항공운송’으로 연결되면 ‘이건 손해보는 장사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베트남(Vietnam) 호치민(Hochiminh)에서의 늦은 밤 잠자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 일의 주인공인 ‘이현수(가명, 성균관대 컴퓨터공학)’는 지난 2013년 8월에 베트남으로 갔다. 우리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YBM)’의 연수를 마치고 호치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오면 우리 사무실도 꼭 찾는 편이라 근황을 자주 듣는 중이다. 컬럼을 준비하던 중에 전화로 “신나는 일이나 골치 아팠던 경험 없어?”라고 했더니 풀어놓는 사건이다. 상당히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고 극적이라 현지 업계에서 소문이 났던 일이라며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하노이의 경공업제품을 제조, 마케팅하는 ‘C사’로 입사했다. 현지어와 영어로 무장된 덕분에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하던 중에 호치민에서 B2B영업을 하는 새로운 회사인 ‘B사’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으나 베트남사무소를 만든 지 6개월 밖에 안되는 신생 조직이었다. 여기에 사무소장으로 전직(轉職)을 하게 된 것이다. 취업한 지 3년만에 사무소장! 뭔가 짜릿하지만 책임감도 짓누르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많은 제조기업들이 줄을 이어 들어가는 베트남에 교두보를 구축하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확대하려는 사장님의 생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근무 조건도 좋았다. 초기에는 한국의 거래 연장선상에서 거래처가 확보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과장 본인 스스로 개척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차 있던 시기였었다.

늦은 밤의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한국은 한 밤중인 새벽시간이다. 할 수 없이 담당팀장께 전화를 드렸다. 전후사정을 말씀드리며 ‘한 번 거래를 해보고 싶다. 그러나 운송이 항공편이 불가피하여 원가분석을 해서 아침에 보고 드리겠다며 전화를 놓았다. 다행히 물량은 있다고 확인을 했다. 그리고, 바로 forwarding 거래업체 담당자에게도 운송가능여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하였다. 중형 탱크로리 한 대 분량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부산-호치민’간의 정기 항공편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운임도 확인을 해 두었다.

약 2시간동안 원가분석에 들어갔다. ‘잘 해도 본전’이고, 자칫하면 손해가 나는 거래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을 만회할 거래조건을 정리해 보았다.

아침이 되었다. 공장의 차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정기간동안 동일 자재 납품을 약속 받았다. 다른 자재들도 주문하겠다는 구두 약속도 받았다. 정리가 되었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거래였다. 바로 구두보고와 함께 서류 결재를 올려 본사 사장님의 승인을 받았다.

한국공장, 부산공항, 호치민공항, 납품처공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늦은 시간에 입고가 완료되었다. 24시간만의 일이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혼자서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회사의 승인을 받아 처리하여 서로가 상생하는 거래! 비즈니스맨 최고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 공장이 순조롭게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밤샘한 가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1주일 후에 담당 차장님과 운동을 같이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연신해주었다. 그리고, 그 회사 사무실에 들릴 때 베트남 현지 직원들에게도 잘해줘서 고맙다며 ‘베트남어 구사’에 부럽다며 엄지척도 해주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물량은 5배로 늘어 났고 다른 품목도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하고 헤어지는 길에 한국기업 몇 군데를 더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이번 일을 말했더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고…

이 일을 처음 닥쳤을 때 대우의 김우중 회장님이 생각이 났다. ‘거래를 하든 사람을 만나든 마음을 통해야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라’는 말씀이다. 연수 때 직접 특강에서 들었던 말씀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거래처, 우리 회사 본사 팀장님과 사장님의 전적인 믿음이 뒷받침이 되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말이 성과로 이어지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비록 2년만에 떠났지만 경공업을 하는 전 직장 ‘C사’의 사장님께 배운 지혜도 소중했다. 작은 것 하나도 미리 챙겨두라는 것이다. 이 품목은 자재 특성이나 거래 규모가 제법 크기에 보통 상황이라면 거래선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른 품목 건으로 공장출입을 하면서 미리 챙겨두었기에 테스트나 시운전을 SKIP하는 거래가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제대로 해도 베트남 교민사회에 금방 소문이 났다. 교민숫자는 많지만 정작 이 업계만으로 보면 손바닥만한 규모이다. 평소 처신도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 이후 일이 커 나간다는 느낌이 확연히 와 닿는다고 한다. 힘들었지만 새로운 시장 개척의 이야기를 마쳤다.

내친 김에 필자의 소감을 한 마디 건네 주었다.

“이과장! 일을 잘 하면 무엇이 생기는 줄 아나?”

“예? 돈, 여유, 기회 그런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런데 더 중요한 것 하나가 있지.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게 비즈니스의 원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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