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대한 소고(小考)[김대유의 행복의 온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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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대한 소고(小考)[김대유의 행복의 온도](8)
  • 뉴스앤잡
  • 승인 2020.02.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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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를 비롯한 세계보건기구나 각종 국제 통계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도가 OECD 국가 중 최저를 밑돌고 있다. 우울증은 뇌가 아픈 병이다. 뇌가 우울하면 즐거울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량이 줄어든다. 우울증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치병에 해당된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머리에 꽃을 꽂고 헤벌쭉 웃으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미친 여자나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울다가 웃는 미친 남자들이 동네마다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모두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서 볼 수가 없을 뿐이지 급성 우울증 환자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다.

우울증은 부정적인 성격이나 유전적 요인도 따르지만, 지금은 성인병처럼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전문직은 물론이고 환자만 보는 정신과 의사들조차 우울증 유발의 적합한 대상일 뿐이니, 우울증은 누구나 언제든 걸릴 수 있는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의하면 정신과 전문의들은 매년 한국인의 약6%인 300만명이 업무와 학업, 가정불화와 가사 등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우울증을 경험하지만 막상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람은 51만명으로 17%에 불과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불안을 떠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이 없어서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여러 가지 불안증을 유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한국인, 특히 남성들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감정을 자제하고 언어표현도 외향적이지 못해서 마음의 고통을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한번 깊은 우울이 오고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면 불면의 밤이 찾아온다. 불면증은 우울증을 수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음하거나 수면제를 상복하게 되면 어느새 합병증이 온다. 합병증의 증세는 너무나 참혹하여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번 인내심을 갖고 우울증의 합병증세와 기본적으로 자가진단을 할 수 있는 우울증의 증세를 함께 살펴보자.

첫째, 나는 우울증인가? 우울증이 밑으로 가라앉게 되면 의기소침과 절망이 반복되고 표면으로 치받치게 되면 분노나 짜증으로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대개 후자에 속한다고 전문의들은 진단하고 있다. 보름 이상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우울과 짜증이 반복되거나 취미생활도 멀리하면서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드라마나 보고 게임에 몰두하게 되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불면의 날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고 직장생활도 싫증이 나서 기피하거나 지각과 무단결근이 발생하면 이 또한 우울증 진단을 받아야 한다. 매사에 짜증을 부리고 기분이 가라앉는 것이 반복되거나 가슴에 불이 나고 돌이 걸려있는 것처럼 무거우면 이른 바 홧병(火病)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우울증 증세인 홧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의 정신과협회에서는 이를 한국의 문화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해서 ‘문화결함증후군’으로 명명하고 있다.

둘째, 우울증은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수반한다. 배우자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끼거나 분노가 쌓이면 복수를 다짐하게 되고 피해망상증을 겪게 된다. 또한 배우자의 행동과 관계없이 오랫동안 자존감의 상실을 겪게 되면 자신의 모든 불행이 상대방 배우자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믿게 되어 배우자가 자신을 배신하는 등의 행위가 망상증으로 고정된다. 망상증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만약 의처증에 걸린 남편이 망상증을 앓게 되면 자신의 상상을 실제 현실로 믿게 되어 배우자의 모든 행위를 망상증에 맞추게 된다. 언제든 시도때도 없이 배우자에게 전화를 해서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체크하고 모임이 있을 때는 데리러 오기도 하는 등 모든 행위를 의심하고 검열한다. 배우자의 부정(不貞)을 의심하게 되면 실제이든 아니든 모든 답변을 부정(否定)하게 되고, 언어와 신체 폭행을 수반하며 심지어 살인에 이르게 된다. 많은 전문의들은 한번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걸리면 이혼을 하거나 죽어야만 낫는다고 진단하고 있다. 불치병이란 뜻이다. 의처증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질병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작품 중 하나인 오델로에서도 주인공 남자가 의처증에 걸려서 부인을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을만큼 널리 오랫동안 많이 퍼져있는 병이다. 내 주변의 지인 중에서도 이십대 초반부터 육,칠십대에 이르기까지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걸려서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흔한 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체면문화로 인해 쉬쉬하고 감추는 관행이 만연한다.

셋째, 우울증은 자살과 묻지마 살인 등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자살을 고려하거나 시도하는 경우가 2배 정도에 이를 정도로 자살지수가 높다. 여기에는 문화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인과 유럽인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가정문화를 갖고 있고, 학교에서 에세이 작성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교육을 받아서 우울증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사회적 체계를 작동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우울증이 높아도 그만큼 해소 시스템에 의존해서 자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남성들은 마음의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문화를 갖고 있고, 여성은 자기주장이 명확하기 보다는 겸손하고 음전한 태도가 칭찬받는 문화에 젖어 있는 경향이 있다. 패미니즘이 도입되고 여성의 주장이 활발해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수백년동안 내려 온 유교의 영향이 그만큼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이 억압돼 있고 표현을 잘 안하기 때문에 자살징후가 나타날 정도가 되어야 알아차리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병원에 와도 이런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서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를 어렵게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0년 째 자살률 1, 2위를 다투게 되었고, 그 중 10대 청소년과 65세 이상 노인 층의 자살률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로 인한 손실과 사회적 불안은 경제불안의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우울증과 그에 따른 합병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살이 급증하고 묻지마 살인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모든 연령층에 나타나는 환자의 증가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의 처방과 제언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확고한 미래비전과 체계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첫째, 의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울증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중앙정부나 질병관리본부 차원의 상설 대책기구를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아울러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보건 교과서나 도덕 교과서 등에 대단원으로 다루어서 조기교육을 통해 우울증을 인식하고 예방하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수가 대상에 전 연령층의 우울증 치료에 대한 범위를 확대하고 보건소와 국공립 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우수한 정신과 의료팀을 의무적으로 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우울증 치료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둘째, 교육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토론수업이 가능하도록 현재의 단위제 교육과정을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학점제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고 개편의 권한을 교육부에서 국회로 옮겨 민의를 수렴하고 선진국의 학점제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며, 교육선진국들의 사례처럼 수능을 고교 졸업이수시험이나 대입 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하고,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폐지하여 교육청이나 교육대학원에서 학사 후 과정으로 학점제에 맞는 유연하고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셋째, 경제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의 공익지원에서 우울증 치료에 대한 연구와 활동, 관련 의료시설의 확충을 대상 분야로 포함시켜서 지원의 연속성을 유지하게 된다면 정부의 관료적 대책보다 훨씬 효율성을 갖게 될 것이다.

우울증으로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영화배우 장국영과 마를린몬로, 최진실과 정다빈, 이은주, 역사 속의 사도세자, 정치인과 이름 모를 주부들…. WHO는 “세계인의 죽음 가운데 자살로 인한 죽음은 전쟁에 의한 수치보다 높고 살인에 의한 수치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먼 나라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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