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는 자아실현의 기회이며 궁극적 가치는 행복 [신의수의 진로이음](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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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는 자아실현의 기회이며 궁극적 가치는 행복 [신의수의 진로이음](52)
  • 뉴스앤잡
  • 승인 2023.12.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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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시대 변화에 따라 발전해 왔다. 그리스 시대에는 노예제도에 기반을 둔 귀족주의 사회에서 신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으로 여가를 제도적, 개념적으로 구분한 시기였다.

고대 그리스 물리학·생물학·동물학·심리학·정치학·논리학·형이상학 등 모든 분야에 탁월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여가를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기회로 보았다.

또한 여가는 좋은 것이며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며 덕과 선을 함축한 인간의 자기 개발과 관련된 활동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일의 의미로 노동은 단지 생존의 기회를 얻기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결국 자기실현을 위해 노동은 피해야 할 것이며 노예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신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happiness)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 철학자인 플라톤(Platon)은 놀이와 교육은 궁극적으로 목표가 동일하고, 교육과정에서 놀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은 바로 놀이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신을 깨달을 수 있는 자기실현이란 진지한 자세를 요구하는 물질추구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인생을 유머와 낙관주의로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며 이상적인 삶이란 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그 핵심에 놀이의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로마시대(~A.D. 4C)에도 여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추구 여가관을 전승하여 지배계급에 의해 여가활동 자체가 향락적으로 변질되었고 이러한 여가 문화는 로마제국이 멸망에 이르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중세의 여가(5C~3C)는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 혹은 신을 위한 찬미의 시간’이었으며 자유 의지나 쾌락으로서 여가의 의미가 철저히 배격되는 시기였다. 르네상스 시대(14C~5C)는 종교적 교의로부터 인간 해방이며 자유의 다른 표현인 인간성의 표현 기회인 인문, 예술 등 여가 활동을 창조의 기회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시대(16C~7C)에는 여가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팽배했다. 종교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개혁교회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신의 일에서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여가는 게으른 것이며 악마의 일이다”라고 하였으며 여가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때는 “노동력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일 때 뿐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천직(天職) 개념으로 성실하게 돈을 버는 행위는 바람직한 가치가 되었고, 근면, 성실은 최대의 덕목이 된 반면, 여가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근세(18C~20C 초)에는 공장의 발달로 인하여 일터와 놀이터(가정)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생활구조로 바뀌었고 산업중심의 시대는 근면 성실이 신의 은총을 위해서만이 아닌 개인의 소득과 공장의 생산성을 위한 미덕이며 여가는 단지 노동의 수반활동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가와 일의 개념이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가정과 일터가 나누어지고 청교도주의의 천직개념은 더욱 강화되어 여가는 단지 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간주되었다.

세계대전 이후(20C 중~1970년대)는 휴가 개념의 제도화, 다양한 가전기구 발달로 인한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으로 인하여 산업사회의 여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양적으로도 여가시간이 증대하였다,

그러나 여가는 여전히 소비적인 것이며 단지 노동을 위한 재충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나 비슷한 형태의 여가 활동, 비슷한 시기의 휴가, 단체 여행 등 여가소비문화가 표준화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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