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이라도 다녀오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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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이라도 다녀오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42)
  • 뉴스앤잡
  • 승인 2023.07.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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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피성 해외 유학을 꿈꾸는 청년

경기권 대학에 다니는 1학년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의사가 되고 싶어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 그 상태로 수능점수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 지금까지 겨우 버텨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 유학을 가고 싶었단다. 적성도 맞지않는 이과 계열 국내 대학 대신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차선책으로 지금 대학을 다니면서 1~2년 준비해 외국 대학에 다시 입학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단다.

 

자신이 생각한 차선책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발판이라기보다 지금 다니는 대학에 대한 불만족을 해소하려는 단순 의도가 아닌지 스스로도 의심스럽다. 이처럼 현실도피성 유학을 생각하는 청춘들이 간혹 있다.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국내 취업 시장에서 자기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해외로 나가고 싶다든지,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싶다든지,대학원을 외국으로 가고 싶다든지 하는 식의 소망이 마음속에서 막연히 꿈틀댄다면 일단 그러려는 진짜 의도를 스스로 진지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마음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이루고 싶은 꿈도, 뚜렷한 목표도 없이 외국에 나가봐야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해외에서의 여러 경험은 취업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다만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편적 결론을 내릴 문제는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 때는 ‘좋다’, ‘안 좋다’를 떠나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즉, 어떤 마음가짐과 목적으로 그런 시도를 하려는지부터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잘해나갈 근성과 행동력이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도 못한 채 보는 눈만 높아지고 현실 감각이 사라진다.


솔직히 말해 젊은 날의 나도 해외로 무작정 도피하려 한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다닌 첫 직장에서 IMF의 영향으로 인한 구조조정 때문에 해고를 당했을 때였다. 상상조차 못한 일을 실제로 겪고 보니 그 충격이 꽤 오래갔다. 감당하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고, 나는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는 녹다운 상태가 됐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아니다. ‘멘붕’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다 안 될 정도의 공황 상태였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나자!’라고 결론지었다.

 

막연하나마 미국이라도 다녀오면 문제가 해결될 것만 같았다. 최소한 영어는 잘하게 될테니, 정 안 되면 나중에 학원 강사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 싶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돈은 한 푼도 지원해주지 않으셔도 되니까 제발 미국만 가게 해주세요. 지금 제 능력으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가 없어요.”

결국 허락을 받아내긴 했는데, 목적지는 미국이 아니었다. 일단 국내에서라도 혼자 여행을 해보며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고 싶어졌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탓이다.


‘이 작은 외로움도 못 견디는 내가 어떻게 몇 년이나 해야 하는 외국생활을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내가 미국행을 원했던 진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됐다. 당장의 취업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해결하기가 두려운 나머지 피하고 싶었고, 그 핑곗거리로 외국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억지 결론을 내렸던 거다.

 

나는 ‘그래, 일단은 부딪쳐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영업직에 도전하게 됐는데, 그 일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전혀 모르던 분야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 동안 앞으로 어떤 일도 잘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현실이 힘들면 누구나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럴 때일수록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깨달음은 한순간이지만, 사람은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 깨달음 이후에도 차가운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미래를 지속적으로 준비해나가지 않으면 현실의 두려움으로 인한 악몽이 미래에 고스란히 구현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다니는 대학이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거나,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지금 다니는 직장의 조건이 나쁘다거나, 맡은 업무가 하고 싶은 종류의 일이 아니라면 하기 싫은 일에 굳이 매달려 있을 필요는 없다. 해외로 나가고 싶다면 한 번쯤 나가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일단 현실에 부딪치면서 배워나가려는 자세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모르면서 외국에 답이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도 잘못된 생각을 진짜인 것처럼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의 오류를 범한다. 문제의 해답을 자기 내면이나 현재가 아닌 외부나 미래에서 구하려는 오류다. 해외에 가고 안 가고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이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학과를 옮기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다른 회사로 옮겨봐야 불만족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울수록 자기 마음을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 삶의 전반을 재검토해야만 한다.

 

당신이 원하는 인생은 무엇인지,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생각해보고, 그에 걸맞은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냉혹한 현실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마라. 현재 자리에서 미래의 당신을 부지런히 만들어나가야 원하는 모습의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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