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제주 청년의 새로운 글로벌 가능성을 응원합니다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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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주 청년의 새로운 글로벌 가능성을 응원합니다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52)
  • 뉴스앤잡
  • 승인 2021.08.1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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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 합니까? 베트남에서 처음부터 인정받고 돈 모으니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데요.”

“미얀마에서 3년 정도 되니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용틀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국해 간호학과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아직 20대이고 기회가 많으니까요.”

제주대학교와 글로벌 청년사업가(GYBM) 양성과정을 거치고 동남아 현지에 취직했다가 최근에 한국으로 복귀한 두 여성의 당찬 자신감이다. 한 명은 베트남 과정을 10년 전에 마치고 최근까지 베트남에서 지냈고, 한 명은 4년 전에 미얀마 과정을 마치고 작년 말까지 미얀마에 있었다. 둘 다 고향인 제주에 돌아와 새로운 도전의 길에 있었다.

지난주 8월 13일 금요일에 제주도 제주 국제자유도시개발 센터(JDC)에서 GYBM 과정 모집 설명회들 가졌다. 제주 청년들의 글로벌 성장을 지원하며 GYBM 과정에 지원하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두 명을 선배 강사로 초대했다. 본 강의에 이어 현지 경험을 말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자기소개 내용이 예상과는 상당히 다르게 색깔이 입혀져 있었다.

베트남의 10년, 남다른 집중과 준비된 잠재력

베트남과정 1기 출신인 김나라 씨의 지난 시간을 정리해본다. “저는 베트남 10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초기부터 거기서 번 돈으로 제주 부동산에 계속 투자했습니다. 우리 GYBM 과정 동문과 결혼하고 딸도 하나 두어 4살이 되었습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애 키우고 집안 챙겼습니다. 열심히 하니 보너스도 많아지고 심지어는 거래처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그렇게 모은 돈이 베트남에서는 이자율이 10% 수준이니 더 불어나갔습니다. 덕분에 제법 큰돈이 모였습니다.”

제주도 부동산에서 성공한 비결을 물었더니 “업무에서 배운 마케팅 감각으로 될만한 것 찾아 눈여겨보고, 집을 누구나 탐나게 고쳐 에어비앤비, 임대, 펜션 사업 등을 한 것입니다. 베트남 동기들이 놀러 다니고 골프 치러 다닐 때 다르게 지냈습니다. 덕분에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행운도 따랐고요."

너무 신나게 이야기했다. 남편도 한국으로 돌아와 전북 군산에 있는 회사로 취직을 해 거기다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지역 경기가 어려워 그런지 신규 아파트 공급이 별로 없었지만 기존의 좋은 물건을 골라 싹 고치니 또 돈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적당한 시기에 다시 베트남으로 나갈 것이며 딸내미 교육과 다음 커리어를 잘 그려가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듣다 보니 재미있었다. 10년 전부터 자기 사업 한 번 해보겠다고 기염을 토하더니만 감각이 보통 아니었다. 그 노력 덕분에 남다른 감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행사를 마치자마자 펜션 인테리어 공사 챙긴다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미얀마의 4년, 그리고 새로운 공부와 도전

미얀마 과정 4기 출신으로 4년 동안 양곤에서 지낸 김단비 씨의 말을 정리해 본다. “1년 연수를 마치고 3년의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영문과를 나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섬유 봉제회사에 취업해 줄곧 그 회사만 있었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욕구는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쿠데타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엄두도 못 내었습니다. 금방 끝날 상황이 아닐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었던 ‘간호사’의 꿈을 찾아 고향의 제주도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3월 한라대학교 간호학과 2학년에 학사편입으로 합격했습니다. 앞으로 3년을 공부해야 합니다”

4년 전에 미얀마라는 지역에 도전했던 배경을 물었더니 약간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해외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의 행사인 한상(韓商) 대회가 제주도에서 개최되어 호기심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인도네시아에서 나이키 제품을 제조하는 회장님의 강연을 듣고 해외 취업을 꿈꾸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로 지원하니 25세 이하 여성이라 비자가 불가능해 미얀마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취업한 회사는 직원이 1,000여 명으로 직물(우븐, Woven)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재무, 영업, 생산, 관리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취업한 지 1년 반 정도되는 시점에 코로나19와 쿠데타가 동시에 밀어닥쳤습니다. 일감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 시스템이 정지되어 은행도 문을 닫았을 때 직원들 급여 주는 것도 쉽지 않았던 일들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와있지만 가끔 같이 일했던 미얀마 직원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기만 합니다”라며 복잡한 속내를 말했다.

“돈도 좀 모았겠네요”라고 했더니 “3년간 간호학과 공부하면 다 쓸 것 같습니다. 다음 미래는 좀 더 복합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고생했던 것 생각하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간호사에서 의료산업으로 생각을 조금 넓히면 의료용품, 소모품, 장비나 용구 등으로 넓어지니까요. 혹시 돈 많은 미얀마 사람들 제주도로 의료관광을 유치할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어수선하지만 그런 때도 오겠지요?”라며 마감했다.

내 꿈의 실현과 성과

GYBM 과정에 입소하면 1년 연수를 통해 10년, 30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키우도록 가르친다. 남다르게 힘들고 산업적으로 발전이 덜 된 지역으로 가는 것이니 할 일이 더 많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가급적 제조 분야를 지원토록 권유를 하는 편이다. 제품이 비교적 배우기가 까다롭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생각대로, 계획한 대로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것은 뭘 하더라도 잘 헤쳐나갈 전사(戰士)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갑자기 나무의 나이테가 생각난다. 사시사철이 뚜렷할수록 나이테는 선명해진다. 그 힘으로 쭉쭉 성장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의 식재료가 맛있고 물이 좋다고 한다. 진시황제가 동방에 불로초를 구하러 간 곳이 대만, 일본이라는 말도 있으나 우리 한반도, ‘대한국토’이며 그중에 영주산이라는 말도 있다. 그 영주산(瀛州山)이 지금의 한라산이다. 서귀포의 정방폭포 옆에 서복전시관이 있다. ‘서복’이라는 인물이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돌아간 3,000명 동남동녀(童男童女)의 인솔자라고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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