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시험만이 공정한가? [서동기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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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시험만이 공정한가? [서동기의 시선]
  • 뉴스앤잡
  • 승인 2021.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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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정당이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을 실시하겠다고 하여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기서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이란 여러 시험 문항을 통해 공직자의 해당 직무 수행 능력을 묻고 이를 점수화, 즉 수치화 가능한 평가도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정당은 공천할 후보들의 자격시험을 통해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도록 하자는 취지로 제안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최근 공정성 이슈에 민감해하는 젊은 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시험’이라는 객관적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든다.

우리는 수많은 객관적 시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각종 채용을 위한 인성/적성 검사, 자격증 시험 등을 통해 나의 능력과 인성을 객관적 수치(점수)로 입증한다. 선출직 공직 후보자 역시 ‘객관적 시험’을 통해 자신의 공무 능력을 입증하는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는다면, 이는 언뜻 공정성을 담보하는 객관적 지표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지검사/ 심리검사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자격과 역량을 ‘시험’만이 공정함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처럼 이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직자의 잠재 능력을 시험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측정하고자 하는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험을 만든다는 것은 아주 어렵고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측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시험’을 통한 인재 선발은 우리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컴컴한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을 견뎌야 하는 ‘시험’을 치르게 된다. 쑥과 마늘은 인내심이라는 인성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도구로 볼 수 있다. 그 이후로 신라 시대의 독서삼품과, 고려 시대의 과거제도 도입, 조선 시대의 과거제도 확대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험이 객관적 평가로 시행되어 왔다.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객관적인 제도의 도입은 인재 선발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좋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대리 시험과 컨닝이 난무하고 순위 조작과 같은 여러 병폐가 있었다. 즉 인재 선발에 있어서 ‘시험’이라는 제도가 인재 선발의 공정성을 담보해주지는 못했다. 또한 한국사회의 평가의 역사를 볼 때 시험을 통해서만 인재를 선발하지는 않았다. 판단적 평가(추천)와 객관적 평가(시험)를 지속적으로 균형을 맞추어 사용해왔다. 삼국시대에는 국립교육기관에 입학 대상자를 추천하였고 관직에도 추천방식인 천거의 제도를 사용하였다. 고려 시대에도 서경 제도로 관리자 등용을 추천하였고 음서제도를 통해 고위관리자를 추천 등용하였다. 물론 판단적 평가 또한 여러 가지 문제로 개선의 여지가 있으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였다. 외국에서도 객관평가인 시험과 판단적 평가인 추천을 직무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으로 객관적 평가인 인·적성 시험과 판단적 평가인 역량평가 면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적 평가와 판단적 평가의 장점을 모두 가지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에 기반한 블라인드 채용으로 학벌,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공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채용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NCS의 목적에 맞게 학벌이나 스펙에 의해 또는 일반 지능에 의해 지원자를 한날 한시에 모여서 시험을 치고 서열화하여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필요에 따라 상시적으로 직무에 적합한 기술을 가진 응시자를 선발하는 채용의 방식으로 앞으로 대한민국의 채용방식에 변화를 일으키리라 본다.

그러나 이 또한 NCS에 기반한 영역의 기술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문항을 만들지 못하고 선발된 응시자의 직무성과가 정확하게 예측되지 못한다면 과정 자체에 만족하고 결국 형식적인 제도로 남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공직자의 역량과 같이 어떤 직무는 직무능력표준을 매뉴얼로 작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부디 NCS를 적용하는 기업이나 업체들이 근본 취지에 맞게 각 분야에서 타당하고 적절하게 적용하여 대한민국의 채용시장의 변화를 일으키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공직자를 선발할 때 객관적 시험보다는 학벌,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공직의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직무역량을 가진 공직자가 천거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공직자 직무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국민 스스로가 공직자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객관적으로 마음속에 가지고 그들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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