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궁(窮)함을 남과 통(通)함으로 극복 [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10)

인도네시아 공장의 자재 불량으로 생산위기, 협력사와 극복

2020-01-23     뉴스앤잡

“박음질(봉제:縫製)을 하면서 보니 자재 하나가 전량이 불량이었습니다. 취업한 지 2년 반 정도 지난 시점에 일어난 일입니다. 수습을 어떻게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작년 초, 휴가차 서울 사무실에 들러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에 제법 의기양양했던 안현수 씨(가명, 상명대학교 행정학과)가 겪은 사건이다. 지난 6월 다른 일로 통화하며 “서울 방문 이후 사고 친 적 없었냐”고 물으니, 주저하다가 ‘큰 사고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글로 말로 주고받으며 당시의 일, 성장의 아픔(성장통;成長痛)을 정리해 본다.

안현수 씨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진행하는 글로벌청년사업가 양성과정* 수료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간지 4년여가 지났다. 말로만 듣던 인도네시아의 명문인 반둥(BANDUNG)의 ‘반둥공과대학교(ITB)’에서 1년 동안 현지 문화를 포함한 비즈니스교육을 받고, 현지의 한국기업에 취업하여 일한 지는 3년이 된 것이다.

안현수씨가 근무하는 회사는 미국이나 유럽의 회사들로부터 가먼트, 니트, 티셔츠 제품을 오더로 받아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제조하는 섬유회사이다. 3,000여명의 현지인에 한국인은 15명 정도이며 섬유기술자들이 대부분이다. 자카르타에서 500km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어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면 10여 시간 정도이지만, 도로사정과 트래픽 잼(TRAFFIC JAM)까지 겹치면 15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다. 가끔씩 한국의 잘 뚫린 도로사정으로 보면 5~6시간 걸릴 것으로 착각도 하지만, 인도네시아 국토의 크기와 지리적 특징을 감안하면 일상적인 조건이다.

작년 2018년 12월경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대형유통마트에 납품할 아동용 의류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박음질(봉제)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아동용 의류는 크고 작은 액세서리부품이 결합되고, 그림이나 캐릭터 등을 프린팅이나 자수로 올리기도 한다. 사이즈나 컬러도 다양하고 까다로워 손이 많이 간다.

대개의 원자재들이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JAVA)의 중부, 서부의 협력업체에서 만들어 오면 봉제를 하는 것이다. 그날은 앞서 진행한 다른 오더 생산으로 여념이 없어 입고시 확인도 제대로 못한 상태로 작업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불량이라고 했다. 급하게 전수조사를 해보니 70%수준이 불량이었다. 전면 중지하고 수습하는 과정을 따져보니 출고일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연간 작업량 천만 장 수준에 비하면 10만장이나 되는 작은 오더지만 다른 제품까지 많이 취급하는 Big Buyer였다.

일단 납품협력업체에 알리고 재입고를 받는다 해도 편도에만 무려 14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평소 두 회사를 오가는 셔틀(shuttle) 차량을 이용해서 우리의 원단을 보내면 받는 즉시 협력업체에서 작업을 하고 돌려보내도 2일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라 누구하고 의논하기도 마땅치가 않았다.

결국 상대측 공장과 의논한 끝에 최소한의 기본원단만 가지고 항공편을 이용해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편도 4~5시간에 작업시간까지 감안하면 14시간정도면 돌아와 정상적인 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즉시 공장장께 문제점과 해결대안을 보고하고 1차 준비된 원단을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협력업체에 도착하니 작업자를 집중 보강하고 야근작업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다음 공정도 비상계획대로 잘 마무리하고 돌아와 우리 공장의 공정에 정상적인 자재를 투입하는 등 전 공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마무리를 하고 나니 공장장께서도 전에 없던 이 사태를 잘 수습을 했다며 조심하라고 질책 겸 칭찬을 해 주었다.
제조공장은 모든 제품이 그렇듯이 수많은 원자재, 부자재, 포장자재 뿐만 아니라 거미줄같이 엮어져 있는 기계, 장비, 인원이 맞물려 돌아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때에 제대로 된 자재가 투입돼야 하는 긴박함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한국에 취업하여 일하는 친구나 동기들에게 가끔 이런 상황을 이야기 해주면 나를 무슨 화성에서 온 사람같이 흥미롭게 쳐다본다. 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느낌인데….

듣고 있는 필자가 긴장되는 사건이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면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먼 땅의 인도네시아로 갈 때 상상도 못한 일을 겪으면서 변한 모습을 보다가, 책장에 있는 4년 전의 우리 교육과정지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찾아보니 대비가 되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본인이 얻은 제일 큰 교훈은 자재 입출고시 중요한 건 자재이상유무의 확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베트남이나 미얀마연수과정과 다르게 유난히 타이트하게 외국인 연수생을 관리하는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의 1년 연수과정이 큰 보탬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둥공과대학 수료생들이 지정 시간외의 학교 캠퍼스 출입이나 음식의 제한으로 생활에 적지 않은 불편함을 호소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40명의 동기생끼리 외부의 도움이 아닌 그 상황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의 사단(事端)을 만든 것은 협력사지만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았다. 우리회사가 첫 입고시에 불량을 찾았다면 무난히 넘어 갈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책으로 낸 항공 교통편 아이디어와 로스 시간 없는 즉각 대응이 주효했다. 이는 전적으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맞대며 서로 힘이 되어준 덕분이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4개 국가에서 글로벌청년사업가로 양성하는 글로벌청년사업가(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GYBM)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