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가 백수… 30수, 50수” 그리고, 일 잘 시키는 방법 [박창욱의 줄탁동시 인재키우기](5)

박창욱 칼럼니스트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상근부회장이다. 대우그룹 출신이 진행하는 해외취업 양성 기관인 GYBM(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의 실무 총책임자로, 해외(동남아)진출 인재를 매년 100명씩 키워내는 일의 실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평생 ‘사람’을 연구했다. 특히 ‘일을 통한 행복한 사람’에 대한 연구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을 공부했으나 ‘기업’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대우그룹의 종합상사인 ㈜대우에서 인사관리, 경영기획업무를 하며 ‘미생’을 ‘완생’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2025-07-09     뉴스앤잡
박창욱

아동 내의를 제조·판매하는 섬유봉제업체에 상무로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앞서 다니던 대기업에서 자리를 옮긴 40세의 경력사원, 지금으로 치면 ‘중고신입’이었다. 입사 초기 회의에서 직원들이 “30수”, “50수”, “백수”라는 말을 주고받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때마침 다른 업체에서 ‘백수 내의’라는 신제품 광고도 나오던 시절이라, 웃픈 상상도 했다. ‘백수 내의? 혹시 하얀 색(白)이라서? 아니면 정말 노는 백수처럼 편하다는 뜻인가?’ 몇 날 며칠 말귀를 못 알아듣던 기억이다. 그것도 임원이라는 사람이…

회사 적응의 출발점은 ‘용어’다

직원들에게 “공부할 책이나 용어집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자료가 없었다. 결국 서점에서 대학 섬유공학과 교재를 사왔지만, 정작 필요한 건 10%도 안 되는 방대한 이론뿐이었다. 별 수 있나, 영업·생산·디자인 직원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보며 뜻을 익혔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며 말귀가 트일 때까지 따라갔다.

2~3개월이 지나서야 섬유·디자인·영업 관련 용어 등 줄잡아 1,000여 개의 단어를 몸에 익혔다. 그때서야 회사 안에서, 거래처에서, 고객과도 겨우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실물을 보거나 직접 담당자와 대화하며 익힌 덕분에 더 빨리 내 것이 됐다. 이런 고생은 직장생활에서 분야가 바뀔 때나 새로운 업종에서 일할 때마다 반복됐다.

신입사원에게 가장 먼저 가르칠 것은

기업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에게는 그 어떤 화려한 교육보다, 회사에서 쓰는 기본 용어를 정확히 가르치고 익히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능하다면 실물과 실상황을 보여주며 단기간에 익히게 하는 게 좋다. 회사 제품, 공정, 영업과 경영에 관한 전문용어와 생활용어는 생존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중소기업은 이런 자료조차 없다. 있더라도 너무 오래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사실상 쓸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낮은 직급자들이 구전(口傳)하듯 물려주며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암묵지(暗默知)로만 전해지며 공식 문서화가 안 되고 있다. 신입사원의 정착률을 떨어뜨리고, 이직률이 높아지는 본질적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 진출 기업의 ‘이중고’, 그리고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

이 문제는 한국 기업이 진출한 동남아 국가의 제조 현장에서는 더 심각하다. 신입사원과 바로 위 직급의 상사의 직급 차이가 큰 데다, 현지어 소통까지 얽혀 있다. 심하게 말하면 당사자 둘 다 용어 사용과 이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동남아 한국 제조기업에 첫 취업한 GYBM (글로벌청년사업가) 출신들이 이른 시기에 퇴사한 경우는 필히 직접 면담을 해본다. 퇴사 이유를 물으면 대개가 그냥 부적응이라는 수준이다. 깊게 탐문해 나가면 결국 작은 말귀 오해와 소통 장애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하물며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는 어떻겠는가. 최근 한국 중소기업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무 숙련 교육을 준비하면서 보니, 규모 있는 회사도 의외로 설명 자료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번역은커녕 한국어 자료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서툰 한국어 실력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소통은 큰 벽 앞에서 그저 ‘하루치 일’에 허덕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하려는 것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공익법인의 사명으로 이 과제에 도전하려 한다. 신입사원이 반드시 알아야 할 회사 전반의 정보, 근로 규정, 제품과 공정, 안전·품질 기준, 그리고 회사의 자랑거리 등을 정리해 국적별 언어로 번역하고, 한국어와 외국어를 나란히 대조하는 자료를 만들 계획이다. 현장에서 분명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20개 국가가 넘는다. 미래의 한국을 한 번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