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AI 시대 [최준형의 직무 종말 시대](18)
(1) 생성형 AI의 급격한 발전
국제저작권단체연맹(CISAC)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약 30억 유로에 불과한 생성형 AI 콘텐츠 시장이 2028년에는 640억 유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러한 수치를 곱씹으면, 과거 인쇄술이 도입되며 필경사들이 직업적 변환을 겪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마치 새로운 기계가 돌연 나타나 인간의 오랜 노동과 감각을 가볍게 뛰어넘는 듯한 느낌입니다. 더욱이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학습’을 통해 콘텐츠를 뚝딱 생산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어 불안감이 한층 큽니다.
(2) 위기의 창작자들
이런 기술 발전이 가장 먼저 위협하는 대상은 바로 기존 창작자들입니다. CISAC 보고서는 2028년까지 음악 창작자의 수익이 24%, 영상 창작자의 수익이 21%나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음악 분야를 들여다보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AI 생성 음악이 수익의 20% 정도를, 음악 라이브러리 시장에서는 무려 60%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전통적 의미의 작곡가나 작사가, 편곡가들에게 커다란 불안을 안겨줍니다. 자신이 이룩한 창작의 결실을 활용해 AI가 또 다른 무엇인가를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몫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든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 아티스트들도 이런 흐름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비틀즈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는 “AI가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젊은 창작자들의 지적 재산권 보호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대학 시절 열심히 들었던 그의 음악이 이제는 AI 시대를 향한 경고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빌리 아일리쉬, 니키 미나즈 등 200여 명의 유명 음악가들이 공개 서한을 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왜 기업들이 허락도 없이 우리의 음악을 훈련 데이터로 쓰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문학·영상·언론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배우 줄리앤 무어 등 문화예술계 거장들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뉴욕타임즈나 게티이미지는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스태빌리티 AI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장면이 한데 얽혀 AI 기업과 창작자들의 충돌 양상을 빚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느슨한 규제로 인해 저작물이 AI 훈련에 활용되자 일러스트레이터, 음악가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며, 한국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개선책을 모색 중입니다.
(3) AI 시대 창작이란?
그렇다면 AI 시대에 우리가 ‘창작’이라 부르는 행위는 과연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한 사람이 오랜 고심 끝에 쓴 문장, 고민하며 쌓은 화음, 치열하게 생각해 만든 장면이 ‘작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AI는 방대한 데이터 더미를 바탕으로 패턴을 뽑아내고, 이를 통해 순식간에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때때로 사람 손을 거친 창작물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해 비틀즈의 마지막 곡 ‘Now and Then’을 발표한 사례는 의미심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AI가 준 기회를 목격하는 동시에 그 위험성도 함께 느꼈다고 합니다. 창작자가 앞으로 어떤 존재로 남을까요? 어쩌면 AI를 다루는 ‘감독’이자, 인간적 서사를 불어넣는 ‘큐레이터’로 변신하는 길도 있습니다. 기술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기술을 인간적 상상력으로 감싸 안아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창작 자체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4) 우리의 대응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입니까? 우선 법적, 제도적 정비가 시급합니다. 영국 의회가 AI 모델 훈련 시 저작권 준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AI가 창작물을 활용하기 위해 사전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옵트인(opt-in)” 제도를 논의하는 것은 하나의 시사점입니다. 콘텐츠 사용의 투명성과 공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기술 발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자 스스로도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차피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 없다면, AI를 파트너나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을 익히는 편이 낫습니다. AI가 대량으로 찍어낼 수 없는 개인적 경험, 기억, 정서, 문화적 맥락을 작품에 녹여내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 색채가 AI 시대에 오히려 더 가치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국제적 연대도 중요합니다. 예술가권리연합(The Artist Rights Alliance)이나 페얼리 트레인드(Fairly Trained)처럼 전 세계 창작자들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무려 3만 7천여 명의 창작자가 무단 사용 반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연대가 힘을 발휘합니다. 또한 소비자, 즉 대중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중이 AI 생산물과 인간 창작물을 구분하고, 창작자 권리가 존중되는 문화를 지지할 때, 산업 전반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은 ‘일자리’나 ‘직무’라는 낡은 개념이 바뀌는 과도기일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AI가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기술을 이해하며, 연대와 협력을 확장하고, 소비자 의식까지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창작자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혁신’을 포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창작에 본질과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