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흥망성쇠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인생 가르침 [정철상의 취업백서](5)

2024-10-16     뉴스앤잡

요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체가 어디인지 물어보면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애플? 아니다, 노키아다. 애플은 그 과실을 따 먹은 기업이다. 그래서 로고도 한입 베어 먹은 사과가 아니겠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
기업이든 개인이든 어떠한 기술이라도 최초로 개발해야만 하는 혁신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성공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키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노키아는 파산했다. 후발주자였던 애플과 삼성전자는 성공해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노키아는 실로 대단한 기업이었다. 그냥 평범한 1등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반에서 1등 하기도 힘든데 전교 1등은 더 힘든 일이다. 살던 도시에서 1등을 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1등을 한다면 어떠할까? 전국 수능 1등이라든지, 전국자동차 판매왕 1위라든지 하는 식으로 한 분야에서 전국 1등을 하면 뉴스에 보도되기까지 한다.
아마도 전국에서 치러진 수능시험이나 기능대회, 경진대회에서 1등을 해본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만큼 어떤 한 분야에서 한국 최고가 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엄청난 성과다. 그런데 노키아는 한국 1등을 뛰어넘어 전 세계 1등을 무려 13년이나 해온 기업이다.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가 .

노키아가 잘나갈 때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노키아가 망하다 보니 경영대학원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할때나 외부 특강에서 마치 노키아가 어리석어서 망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
과거 노키아는 전 세계 최고의 컨설팅 업체에 미래전략 컨설팅을 의뢰했었다. 자신들이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을 개발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업전략을 펼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말이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대였기에 컨설턴트들은 “새로 개발한 휴대폰이 무엇이냐” 간단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노키아 담당자는 “휴대폰인데 일종의 작은 컴퓨터처럼 활용할 수 있어 휴대폰에 탑재된 미니컴퓨터 정도로 보면 된다”고 답했다.
컨설팅 업체는 막대한 비용을 받고 분석을 한 뒤에 노키아에 미래전략을 제시했다. 새롭게 개발할 휴대폰은 명품시장이나 고가 시장에서 프리미엄 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동차, 가방, 가죽, 시계 등의 모든 제품들은 다른 제품들처럼 고가의 프리미엄 시장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제품들은 마진율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그 시장이 협소해 전체 세계 시장의 불과 1~2% 점유율만 가능할 것이라 예측했다. 다시 말해 노키아는 이미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으며, 휴대폰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굳이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설사 그러한 형식의 휴대폰이 경쟁사에서 새로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그 제품은 프리미엄 시장일 뿐이다. 괜스레 현재 생산라인을 모두 바꾸어 위험한 투자를 강행하기보다는 현금창출이 원활한 현재 시장의 우위를 계속 지켜나가는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미래전략을 제시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던 노키아는 파산하고 말았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개발한 노키아는 망하고 삼성전자는 흥한 이유

노키아와 정반대 예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있다. 후발주자였던 삼성전자는 도대체 어떻게 반도체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삼성전자는 일본의 한 연구소에 ‘반도체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전략분석을 1970년대에 문의했다. 연구소의 대답은 간결했다. ‘하지 마라’는 것이다.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근거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한국에서는 반도체를 생산할 인재도 기술력도 없다.
둘째, 설령 기술수준이 되더라도 한국이라는 시장 자체가 너무 협소하다.
셋째, 막대한 투자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 연구소의 반대를 무릅쓰고 故이병철 회장과 故이건희 회장은 한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한 공장에 두 개의 생
산라인이 들어서야 하는데 한 개의 라인에 3조 원이 필요하니 공장 하나를 만드는 데 6조 원의 비용이 들게 된다. 반도체는 그 특성상 규모의
경제 3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다섯 개 정도의 공장이 가동되어야 하니 30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당시가 1970년대였으니 얼마나 큰 규모의 투자인지 가늠하기 힘들정도다. ‘괜스레 반도체 사업 벌였다가 그룹 전체가 다 망할 테니 포기하라’는 경영 컨설턴트의 주장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런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결국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기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돌파해야 할 난관들이 있다. 자신이 마주한 난관들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분명 전문가들의 의견도 참조하고
수렴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도 때론 오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이 말이 전문가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
들의 의견을 참조하되 그 선택은 오롯이 내가 책임지고 선택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앞서의 사례는 중요한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기에 곱씹어
떠올려야만 하지 않을까.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이라는 기업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셸(Shell)은 지금 세계적 기업이 되어 유명하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조그만 중견기업이었다. 석유 시장이 너무도 안정적이었던 1968년, 당시 20대 후반의 한 젊은 직원이 앞으로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1968년은 OPEC 4의 카르텔 5이 워낙 철저해서 석유 시장이 안정되어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젊은 직원의 보고서는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고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보고서였다. 석유 가격이 폭등할 경우 정유가격을 변동할 수 있도록 계약조건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사보다 더 많은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했기에 회사로서는 비용손실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쉘은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해가며 미래예측을 해보았는데 실제로 유가가 폭등할 경우 현재의 조건에서는 파산의 위기를 겪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유가가 안정적이거나 하락하더라도 계약조건변경을 위해 추가로 지불한 비용은 회사를 쇠락하게 만들 정도의 요인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석유 파동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던 중견기업 ‘로열더치셸’은 몇 년 후 일약 전 세계 2위 정유회사로 성장했다. 반면 당시에 이런 준비를 하지 못했던 기업들은 세계적이었던 큰 기업조차 수없이 파산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