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월드가 AI로 진짜 열리다 [최준형의 직무 종말 시대(13)

2024-07-12     뉴스앤잡

게임 산업은 언제나 기술 혁신의 최전선에 있어왔습니다. 그래픽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사실적인 가상 세계를 구현해 왔고,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은 게임 산업은 또 한 번의 혁명적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살아 움직이는 NPC'가 있습니다.

NPC(Non-Player Character)는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지금까지 NPC는 주로 정해진 대사와 행동을 반복하는 로봇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NPC는 이제 진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살아있는 존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픈월드 게임에서 AI NPC의 등장은 게임의 본질을 바꿀 만한 혁명적 사건입니다. 오픈월드 게임은 플레이어가 광활한 가상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합니다. 그동안 오픈월드 게임의 가장 큰 한계는 NPC의 단조로움이었습니다. 아무리 넓은 세상을 만들어도, 그 안을 채우는 NPC들이 항상 같은 말만 반복한다면 플레이어는 금세 흥미를 잃게 됩니다.

AI NPC의 등장으로 이런 한계가 극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NPC들은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가지고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합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심지어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것을 넘어, 가상 세계를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는 세계'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똑똑한 NPC의 탄생

AI NPC의 능력은 실로 놀랍습니다. '코버트 프로토콜'이라는 게임은 AI NPC의 잠재력을 잘 보여줍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립 탐정 역할을 맡아 호텔에 묵고 있는 특정인의 방 번호를 알아내야 합니다. 모든 정보는 NPC와의 대화를 통해 얻어야 하는데, 이때 NPC들은 마치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눕니다.

더 놀라운 점은 NPC들이 미리 정해진 정보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마다 다른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AI NPC의 발전은 게임의 재미를 한층 높이는 동시에, 게임 개발 과정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레드 데드 리뎀션2'라는 게임은 700명의 배우를 동원해 50만 개의 대사를 준비했지만, 여전히 플레이어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AI NPC를 활용하면 이런 노동 집약적인 작업 없이도 무한히 다양한 대화와 상호작용을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NPC에게 내향적이거나 불안해하는 성격, 또는 늘 술에 취해 있는 등 다양한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게임 속 세계를 더욱 다채롭고 현실감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AI로 달라진 게임업계

AI NPC의 등장은 게임 업계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미 87%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가 AI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99%의 스튜디오가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89%의 게임 개발자들이 AI가 게임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매우 기대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AI 기술의 도입은 게임 개발 과정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방대한 양의 대사와 상황을 일일이 작성하고 프로그래밍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이러한 작업의 상당 부분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개발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는 동시에,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AI는 게임 밸런싱, 버그 체크, 사용자 경험 분석 등 게임 개발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게임의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개발자들이 더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게임 AI의 명과 암

AI NPC의 등장이 게임 산업에 가져올 변화는 실로 엄청납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렇듯, AI NPC 역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AI NPC는 게임의 몰입도와 재미를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마치 실제 세계에서처럼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며 더욱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하나의 가상 사회, 혹은 새로운 형태의 소통 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또한 AI NPC는 게임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준성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가 만든 '가상 마을'은 경제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실험해볼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25개의 AI로 구성된 이 가상 마을에서는 AI들이 상호 작용하고 정보를 전파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기대됩니다. 이미 어린이 특화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AI 캐릭터와 영어 학습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AI NPC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영어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언어 학습을 더욱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AI NPC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큰 우려는 윤리적 문제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AI NPC를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허용해야 할지, AI를 상대로 나눈 대화의 내용을 게임 회사가 보관하고 활용해도 되는지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또한 너무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AI NPC의 등장으로 일부 사용자들이 현실 세계보다 가상 세계에 더 몰입하게 되는 '게임 중독'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AI와의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려들은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윤리적, 법적 규제도 함께 발전해야 하며, 사용자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AI NPC의 등장은 게임 산업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과 경험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동시에 이는 많은 직업군의 변화도 예고합니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 음성 배우, 애니메이터 등 기존의 많은 직군들이 AI에 의해 대체되거나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AI를 다루고 관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게임을 통해 AI가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미리 엿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AI NPC의 발전은 단순한 게임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혜택을 최대화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