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끄는 힘과 미는 힘의 합력으로 나아가자! [천기덕의 천기누설](59)
자율은 규제를 이기는 자율적 끌림의 힘이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하고 친해지면 더욱더 잘 알게 된다. 대학 3 강령 중 하나가 친민이다. 잘 알려면 가르치고 코치를 잘하는 교화와 동화가 중요하다. 전두엽 활성화의 생각 근력을 가꾸는 깨우침과 뉘우침이다. 정답보다 신축적 해답을 구하는 일은 잘 알고 인지하고 반복하다 보면 여유가 생겨 창의성이 발현된다. Bloom교수의 분류학(Taxonimy)의 요체요 체득화의 데이터가 말해준다. 스스로 터득하면 지속하는 힘이 생긴다.
호기심을 가지고 근본 바탕을 물어 캐묻다 보면 치지에 이르는 것이다. 3강령의 실천 방안인 대학 8 조목의 첫 4가지가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 치지(致知: 확실하게 아는 데 이름), 성의(誠意: 자기 뜻을 정성스럽게 함), 정심(正心: 자기 마음을 바로잡음)이다. 이치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규제와 강제는 자율을 이기지 못한다. 교화와 계몽의 성숙도와 격의 차원이 다르다. 1등이냐 일류냐의 차이점 같은 것이다.
순위는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오랜 축적으로 쌓인 내공인 일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21C의 경쟁력이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문화는 한 조직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태를 말한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생활과 행동 양식이다.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에는 의식과 문화가 우선이다. 그런 맥락에서 계몽과 계도는 좋은 문화를 형성하는 바른 삶의 가로등이요 등대라 볼 수 있다.
Stephen R Covey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5번은 잘 들은 다음에 이해시키라고 주장한다. 소통과 공감의 대원칙이다. 인지적 의식이 안된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준수를 요구하면 본질은 없고 맹목적 순종에 반발을 일으키기가 쉽다. 자발적 자율은 기대하기 어렵다. 설득과 공감이 견강부회보다 훨씬 효과적이라 90%는 이루어지게 된다. 단체 생활과 조직을 이끄는 강력한 힘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설득이 전륜이라면 지지는 후륜이라 할 수 있다.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곧 밀어주는 후륜구동에서 나온다. 요즘의 리더십을 보면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첫째, 명확한 목표가 없다는 점이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명중률은 기대하기 어렵다. 애매모호한 언사는 지지를 얻기 어렵다. 한번도 가보지 나라는 ‘너나 가세요’의 피드백을 받기 쉽고 분명한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말장난으로 진정성이 희박한 언사다. 성의와 정심이 의심스럽다. 그런 말은 힘이 없고 동참을 유도하기 어려운 구두선(口頭禪)이다.
셋째, 실행과 마무리는 없고 조삼모사에만 집중하면 용두사미가 된다. 마음이 없으면 들리지 않아 허수아비 겉치레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전륜구동의 차가 한쪽이 구동력을 잃은 고장난 상태와 같다. 공감적 지지를 받아 강력한 힘을 발휘하려면 4륜구동이 되어야 한다. 전륜의 끌어당기는 힘과 후륜의 밀어주는 힘이 합쳐져야 한다. 손자병법에 <상하동욕자 승>을 말하고 있다. 대학 7장에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들어도 먹어도 그 진면목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구성원이 모두 같은 마음의 열망을 가지고 지지하는 힘을 보탤 때 소기의 성과와 기적을 이룰수 있다. 강력한 구동의 힘은 마음의 합력에서 나온다. 같은 꿈과 공동의 열망을 비전이라고 한다. 공감대가 형성되어 혼연일체가 되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힘과 총기를 갖게 된다. 그것이 이심전심 주고받는 배려의 힘이다. 역지사지 짝을 생각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나보다 나은 반쪽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고한 협업, 시너지의 바탕이 된다.
협업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 설득력은 보편타당한 분명한 논지가 우선이다. 목표의식을 가지고 시작하라. 이것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중 2번째다. 또 가장 강력한 설득의 방법인 시청각 발표다. 정보 통로의 94%가 시각과 청각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명료하게 설득하는 일이 거의 전부인 셈이다. 평창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도 보여준 목적의식(Purpose)이다. 스티브 잡스의 질문도 같은 맥락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도 언어적 논리성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설득력은 60%가 그 사람의 인품(Ethos)에서 나온다. 리더인 선봉장의 역할을 하려면 우선 본립도생으로 인간적인 기본이 되어 있어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VUCA 시대이기 때문에 그 명료성과 목적의식이 더욱더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끝에 가서 ‘이게 아니었구나’ ‘아쉽다‘라고 한다면 책임도 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단체, 공복의 일이 아니라 취미로 하는 시간 떼우기 (passtime)에 지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무능을 넘어서 일종의 범죄라 할 수 있다. 구성원과 호흡을 같이 하고 분명한 목표와 교화로 동고동락의 어울림이 있어야 울림이 있는 소기의 성과를 발 할 수 있을 것이다. 계몽과 솔선이 없는 리더십은 팔로워십을 얻기 어렵다.
이끄는 구동력이 미약하거나 없으면 전륜구동의 이끄는 힘이 부족하고 방향마저 모호하면 추진력은 역부족이 된다. 후륜구동의 절대적 지지가 없어 방향이 없고 속도도 내기 어렵다. 작금의 리더십을 보면 이런 형국인 것 같아 매우 의심스러워 유감이다. 애초부터 모호한 목표, 겉치레 가식적인 말장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의심되어 한심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공약은 헛된 약속이라는 공약으로 비하되고 있을까.
정치인과 정자(sperm)는 인간 되기가 매우 희박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된 현실이다. 그것을 구체적인 숫자로 가늠해 보면 더 명확하게 이해된다. 로또 당첨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다. 그것보다 약 50배나 더 희박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대하기 어려운 확률이다. 이쯤 되면 언어와 지능, 감성과 영성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사유의 특징은 존재의 대의가 무색할 정도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지만 상상력과 사유의 힘이 없다면 갈 때 까지 간 것으로 그 가치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신뢰를 받고 지지를 얻기 위한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 권한과 위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서서 이끌 사람들은 그 막중한 책임을 인지하고 선포한 후 믿음을 주는 이행방안으로 내걸어 보여주고 (Showcase) 한결같이 증명하여야 한다.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The buck stops here.) 트루만 대통령의 말은 고전이다.
즉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염치없는 일은 애초부터 생각하지 말아야 하겠다. 구차한 변명도 얼씬거리지 말아야 한다. <해냄정신>과 용의주도함으로 빈틈이 없어야 신뢰가 쌓이고 지지를 얻게 된다. 가차없는 실행이 신뢰의 싹을 틔운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한결같은 일관성은 신뢰 구축의 초석이다. 조선시대 도성을 점지 할 때 4덕으로 문을 만들고 그 중앙에 신뢰가 있으니 그것이 보신각이다. 인정 파루가 깨우침의 타종으로 경종이다.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대학 8조목을 되새겨야 하겠다. 바른 마음 빈틈없는 행동만이 소기의 성과를 낸다. 솔선수범, 청렴결백한 정직함이 그 요체인 성의 정심이라 생각된다. 총체적인 책임, 헌신, 오차 없는 이행으로 보란 듯이 이루어 내자. 지금 우리에게 긴요한 급선무는 이끄는 힘과 미는 힘, 사륜구동(AWD)의 합력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