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고시 열병은 위험하다!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3)

고시 열병에 시달리는 30대 초반 여성

2021-12-28     뉴스앤잡

고시에만 매달리기엔, 청춘의 시간과 열정이 너무 아깝다!

내가 각종 고시, 그중에서도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청춘들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청춘의 열정으로 뜨거워야 할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현실에 안주하려다 결국 사회적 열정조차 식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감 때문이다.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은 원인 중 하나로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고 공무원으로 안주하려 하면서 일본 경제 전체가 식어버렸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공무원을 안정성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 기여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나친 엘리트 의식이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그런 반성을 통해 일본은 새로운 반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공황 상태의 일본처럼 사회가 활력을 잃어버리고 IMF 체제 때 이상의 대공황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심히 우려스럽다. 그리 되지 않으려면 공무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거다.

누구보다 공시생들이 왜 공무원이 되려는지, 스스로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단지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이 되려는 건 아닌지, 새로운 도전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누구든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사회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나는 각종 고시에 대해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채용 제도보다 시험이라는 공정한 수단을 통해 사람을 뽑기에 합리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 합격 발표의 순간, 각자의 희비가 엇갈리며 개인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장면에서 의문이 들지 않는가. 시험 점수 커트라인을 겨우 넘겨 합격한 사람과 고작 0.01점이 모자라 탈락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사회는 점수 상관 없이 결과만 보고 이 둘을 판단하기 때문에 대우 역시 천지차다. 공무원이나 판검사가 된 누군가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불합격한 사람에게는 백수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낼 것이다. 아마 내 생각에 반박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하지만 고시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명한 사실들을 먼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혈기 왕성 한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 각종 고시에만 매달려 있기엔 그 시간과 열정 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그로 인해 사회적 손실까지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도전하겠다면 반드시, 기한을 정해라!

한 방송에서 50대 중반 최고령 사법고시 합격생의 강연을 봤다. 기능공으로 일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계속 공부해 늦게나마 사법고시에 합격한 성공 사례였다.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일 것이고, 사람들에게 도 분명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시생들에게는 또 한 번 희망을 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편 고작 1년 준비하고 도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단번에 합격한 괴물(?)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이건 극히 드문 사례다. 막연한 꿈을 안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의 영광’을 위해 시험에만 매달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위안 삼는 건 위험하다. 실제로 그런 공시생이 너무 많다. 절반 이상이 이런 마인드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무 수입원 없이 5~6년이나 시험에 매달리면 다 른 식구들이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당사자는 혈기 왕성한 청춘을 담보로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시험에 불합 격할 경우 그 청춘의 시간은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사회·국가적 으로도 열정 넘치는 젊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니 인적 손실이 발생한 다. 금전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무엇보다 청년들이 기가 죽은 채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 활력적으로 손실이라는 거다.

내게는 사법고시에 실패한 대학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의 평소 학업 태도로 봤을 때 사법고시 도전은 무리로 보였다. 그런데도 친구는 졸업 후 계속해서 시험에만 매달렸다. 결국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7급 공 무원으로 목표를 낮췄다가 7급에도 실패해서 9급 공무원으로 목표를 다시 낮췄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만 35세 제한 연령에 다다라서 야 모든 시험을 포기했다.

만일 요즘처럼 나이 제한이 없었다면 최소 몇 년은 더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언제까지 시험에 도전하고, 언제까지 안 되면 포기하겠다’는 식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이라는 시한을 설정하고 도전해야 한다. 포기도 전략이다. 어쩌면 그 어떤 전략보다 중요한 전략이 바로 ‘포기 전략’이 아닐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 역시 “포기는 그 어떤 전략 보다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쉽게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살아생전에 강조했다. 당신은 어떤가. 긍정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포기를 부정적이라 여기며 의도적으로 포기하기를 피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도전하되 반드시, 대안을 세워둬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답답한 친구들이 간혹 있다. 공무원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을 때 무조건 될 거라 우기는 학생들이 그렇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혹시나 안 될 경우를 대비해 제2의 대안을 고민해본 적이 없느냐고 조심스레 다시 물어봐도 막무가내다. 자기는 무조건 공무원이 될 거라며 고집을 피운다.

어떤 청년은 5년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도 이번 한 번만 더 도전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라며,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른다. 긍정적 마인드는 필요하다. 하지만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맹목적 낙관주의는 때로 위험하다. 사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인생이 통째 실패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례도 많다.

지방의 한 사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와 5~6년 간 사법고시에만 매달렸으나 결국 실패한 젊은이가 있었다. 뒤늦게 취업이라도 하려 했지만,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창업을 선택했다. 큰맘 먹고 시작한 사업은 얼마 가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사업하는 동안 만난 한 사업가를 통해 조그만 기업에 들어갔다. 박봉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이었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회사도 몇 배로 키우고 부사장으로 승진도 했으며 대학교수로까지 성장했다. 이제 그는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희망 메신저가 됐다. 대구·경북 취업을 책임지고 있는 취업 사이트 ‘갬콤’의 권오관 부사장(현재 ‘인재교육연구소’ 공동대표) 이야기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 시작했다면 성실한 자세로 꾸준 히 밀고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권오관 대표의 삶에서 새삼 깨닫는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사실 제가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싶어서였어요. 방법은 달라졌지만, 어찌 보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가 꿈꾸던 일인 셈이죠. 오히려 지금의 일을 통해 더 큰 의미를 실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고시 외에도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다. 고시에 실패했다고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다시 일어나 도전해나가기만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려면 평소 주변 인맥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작은 일도 하찮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원하던 일이 아니라고 해서 하는 둥 마는 둥 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누구도 당신을 눈여겨봐 주지 않을 것이다.

맹목적 고시 열병은 위험하다. 반드시 기한을 정하고, 대안을 세워라. 그리고 때가 되면 고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나서라. 더 넓은 세상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