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와 문자, 당신의 문해력 안녕하십니까? [천기덕의 천기누설](32)
연초에 인강을 듣고 조찬회를 다녀와서 깜짝 놀랐다. 글로벌시대에 한자와 영어 공포증(Phobia)이 심한 것이다. 또 독서 낭독때 작가의 특성을 참여자들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평소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영어와 한자를 병기하는 습관이 있다. 한자와 한글은 조직 생활 때 서류에 거의 사용하지 않아 한글 위주의 자료는 낯설었다. 21세기에는 의사소통이 더욱 중요해서 설득, 공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문맹 여부를 좌우하는 시대다.
윤리와 사회과목 강사, 논어 강의를 하는 교수가 한자를 아예 안 쓰거나 학생들 눈치를 보며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았다. 퇴계(退溪)의 『성학십도(聖學十圖)』는 군주가 스스로 성학을 따를 것을 그림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반해 율곡의 『성학집요』는 신하가 군주를 가르쳐 기질 변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한글은 십도나 집요가 엇비슷하니 외우라는 것이다. 도(圖)가 그림을 의미하는 것을 알면 쉽다.
『성학집요』는 통설(統說)⋅수기(修己)⋅정가(正家)⋅위정(爲政)⋅성학도통(聖學道統)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공부하면 금상첨화다. 제1편인 「통설」은 중용(中庸)과 대학의 내용을 인용, 수기와 치인을 다루고 있다. 제2편인 대학은 명명덕이다. 학문에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 마음을 수습하는 수렴(收斂),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궁리(窮理) 등 모두 13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편은 10장으로 위정(爲政)에 관한 것이다. 위정은 대학의 신민으로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제5편은 성현의 도통에 관한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는 정치하는 사람이다. 같은 한글의 ‘위정자(僞政者)’도 있다. 궤변, 술수를 일삼고 허울 좋게 포장, 국민을 속이고 본인의 이익만 챙기는 뻔뻔스러운 쓰레기 가짜 정치인을 일컫는다. 성학십도와 성학집요는 한자를 알면 이해가 쉽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로 세계 1위이며 문맹률은 1%도 안되는 최고 수준이다. IQ도 세계 1위다. 조상들께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문해력은 ‘최하위’란다. 점수는 좋은데 실력은 형편없는 셈이다. 질문, 대안, 독서 부재, 생각이 없는 맹점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 방문 때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하였으나 조용했다. 경청하지 않으면 이해력이 떨어지고 양질의 질문을 할 수 없다. 사고력도 난장이로 머물기 쉽다.
회사 간부 대상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80%가 가장 필요한 기술이 ‘귀담아듣기’이고 가장 부족한 기술 역시 ‘귀담아듣기‘ 였는데 28%가 그렇다고 대답했단다. 왜 그럴까? 행동 발달학자들은 보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중학교에서 문해를 ’무뇌‘로 오해하거나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를 얘기하니 ’랍스타‘ 말입니까?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문해력 부족은 독서량 부족에서 오는 이유가 크다.
외국기자의 지적이나 팔자를 망치는 나쁜 습관중 하나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율곡선생이 격몽요결에서 일침을 놓았다. 정약용 선생은 ’질서‘독서법을 강조하였다. 눈여겨 보고 배울만하다. 질서독서법인데 적는 것은 정독의 10배에 해당하는 기억력을 생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제대로 알고 궁리하고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써서 내 것으로 스며들게 체화하는 것이다.
독서 3가지가 정독 질서 초서다. 둔필승총의 지혜도 활용하여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활자는 읽어도 문맥을 파악하지 못해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이 낮아진다.” 문해, 문자 해득(文字解得)은 눈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언어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해하는 사고방식 능력이다. 유네스코는 "문해란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문장뿐만 아니라 이미지 문해력, 디지털 리터러시 등 다양한 이해력이 등장하고 있다. 4차 산업형 인재에 필요한 소통과 협업능력과 직결된다. 한국인은 뛰어난 머리로 문맹률은 낮은데 ‘지식 강국’은 아니다. 최근 PISA성적이 추락하고, 수평 수직적 세대간 소통이 잘 안되는 현상도 문해력이 낮아 사회 갈등이 심한 것이다. 편가르기로 연 최대 246조원이란 돈이 갈등비로 추산하고 있다. 그것도 2017년 추산이니 지금은 훨씬 더 크리라 생각된다.
지적 양극화, 이념주의의 덫, 이분법적 사고가 코로나 만큼이나 만연하고 있다. ‘라떼’와 내로남불이 세계 언론에 등재되고 불통으로 대인관계, 대화나 일은 고통이 되기 쉽다. 몰입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려 생산성을 좀먹는 실정이다. 또 분노와 스트레스는 몸의 코르티솔 분비로 면역력을 망가뜨린다. 이체유탈화법으로 살아가는 일부 관종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연명을 위해 가리지 않고 매달려 대중의 빈축을 사고 있다.
학습의 현실은 어떤가? 사회에 진출한 우수한 사람들도 1년 가까이 교육을 받아야 겨우 기안서 작성에 숙달된다니 독서, 질문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색과 탐색은 없고 검색만 하니 눈만 바쁘고 생각은 빈약해진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엔 읽어주는 오디오북도 많다. ‘직접 책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는 소리 내어 읽어봐야 한다.’
익히는 습(習)의 영역은 스스로 직접 해봐야 터득되고 스며든다. 공부는 검색하고 탐색과 사색을 강화해야 하는 3색이다.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 것이다. 예전엔 다 그렇게 했다. “고대(古代)의 지식은 그래서 깊다. 知를 넘어 智로 체득된 것이라 가치관과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력(學歷)보다는 학력(學力)이 스펙보다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앎은 암이 되어 어두움(암暗)이나 암(cancer)의 제거 대상이 된다.
귀가 아니라 지식으로 문맥을 알아듣기 때문에 아는 만큼 들린다. 우리 문화와 역사는 약 70%가 한자어다. 역사나 법률쪽은 더 심하다. 일상생활 용어의 문해력이 54%란 조사결과가 있다. EBS의 문해력 테스트에서 중학생 2,400명 중 27%가 또래 수준에 못 미쳤고 초등학생 수준도 11%나 됐다고 한다. 문해가 안되니 공부가 어렵다.
‘문해력’ 읽기는 해도 뜻을 모르는 답답함, 당신의 문해력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