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망해야 대학이 산다! [김대유의 행복의 온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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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망해야 대학이 산다! [김대유의 행복의 온도](4)
  • 뉴스앤잡
  • 승인 2019.12.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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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못하면 대학 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것도 서울대를 비롯한 이른 바 명문대는 아예 꿈도 못 꿀 일이다. 사실 수학을 중시하는 것과 수학을 못하면 대학을 못 간다는 것은 분명 다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학을 중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등학교 문과 학생들에게까지 미적분을 배우도록 강요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의 절반을 수학에 매달렸다. 내가 갖고 싶은 직업은 카피라이터나 작가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구사 능력과 폭 넓은 창작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학을 잘하지 못하면 문학을 전공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독서는커녕 하루종일 수학 과외에 매달리다시피 한다.”

국문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수학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입시생 Y군의 증언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어디에 기인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신력 있는 한 리서치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부 시간을 어느 과목에 투자하는가?’라는 질문에 “수학에 투자한다(57.5%)”라는 응답이 2위인 “영어에 투자한다(24.4%)”라는 응답보다 월등히 높았다. 과외를 하는 과목 역시 수학(67.9%)이 영어(24.2%)보다 많다. 수학을 못하면 수능이고 내신이고 일단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이 우리나라 사교육과 입시에 끼치는 영향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싶다. 가끔 인터넷으로 새벽까지 일본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일본어에 익숙하다. 그러나 나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일본어 1급을 취득하면 수시에 합격시켜주는 사례도 있지만, 역시 웬만한 대학들은 수능 2등급 이내 등 수능성적을 전제로 제시한다. 수학을 잘 못하는 나는 아무래도 원하는 대학의 일본어학과에 진학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여고생 K양은 결국 영어와 일본어만을 입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그녀는 수학 때문에 현해탄을 건넜다. 이른 바 일류라고 하는 한국의 대학들은 엄밀히 따지면 수학 영재들이 모인 곳이다. 문학에 적성이 있고 습작을 좋아하는 아이가 서울대 국문과에 진학하려면 문제풀이식 수학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 만큼이나 수학에도 천재성을 보인다면 모를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아이가 수학에도 천재성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수학자들의 주장은 순 억지다. 우리나라 수학자들은 수학을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 할 수 있다는 형식도야설을 맹신하고 있지만, 형식도야설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각종 수학학회에서조차 그 신빙성이 부정되었고 근거가 희박하다는 결론에 도달한지 오래다. 국가가 제도로 고착화시켜서 수학이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게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런 면에서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명문대학들은 온통 수학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만 우굴거리는 수학영재 수용소로 전락했다.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은 어떨까? 가까이 일본의 와세다나 게이오 대학같은 명문 사립대는 입시의 유연성을 발휘하여 전공분야별로 입시의 형태를 다양화 한다. 인문대를 진학하는 아이들에게는 영어와 일본어 두 과목만 부과한다. 우리나라 수능에 해당하는 대학입시센터고사조차 참고사항일 뿐이다. 반면에 동경의 국립대 히토치바시의 상과대나 이과대학의 당락은 대학입시센터고사의 수학성적이 좌우한다.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 역시 본고사에 해당하는 대학별 고사에서는 대략 2개 정도의 과목만 선택하도록 한다. 물론 인문대학의 경우 대부분 수학과목은 제외된다. 여기에 대학경쟁력의 숨은 뜻이 담겨져 있다.

예컨대 고도의 논문 실력과 어학실력이 요구되는 인문학의 경우를 살펴보자. 알다시피 서울대 인문대를 진학하는 아이들은 논문 습작이나 영어 구문 공부보다는 내신과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 문제풀이식 영어와 수학공부에만 전념하다가 대학에 입학한다. 와세다나 예일대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빠르면 중학교 때부터 소논문이나 영어 에세이 등 질적으로 수준이 높은 입시준비를 한다. 수학에 구애받지 않고 저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능률도 오른다. 합격 통지서를 손에 받아 쥐는 순간 두 집단의 경쟁력은 이미 판가름 나 있다. 단순한 암기식 문제풀이만 반복했던 서울대 인문대 아이들이 몇 년이고 깊이 있는 어학과 논문을 공부했던 외국 대학 아이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무서운 일이다. 여기에 서울대 경쟁력 저하의 비밀이 담겨 있다.

많은 반복과 틀리지 않는 사칙연산에 의해 수학성적이 좌우되고, 그러한 단세포적인 과정과 결과에 따라 입시의 성패가 결정되는 교육과정 및 입시구조는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까지 수학을 필수로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도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수학은 중학교 때부터 선택과목이 되어야 하고 수능과 내신에서도 선택과목이 되어야 한다. 수학이 필요한 전공은 수학을 깊이 있게 공부시키고, 인문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는 수학과목을 입시에서 면제해주어야 한다. 수학이 수학답고 입시가 입시다워져야 한다. 교육부는 수학과목을 양적으로 확대하면서 밥그릇을 지키고자 하는 수학교수들과 교육전문직들의 집단이기주의를 경계하고 극복해야 한다. 대학경쟁력을 높이고 입시를 선진국형으로 개편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보다 수학 문제부터 정리해야 가능하다. 수학과목이 망해야 대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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