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분야로 취업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정철상의 커리어 독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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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분야로 취업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정철상의 커리어 독설](1)
  • 뉴스앤잡
  • 승인 2021.12.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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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적성도 모르는 29세 조교

내가 출강하던 어느 대학에 S라는 조교가 들어왔다. 키도 크고 체격도 건장하고 활달한 청년이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취업을 위한 자격증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명색이 취업 전담 교수로서 도움을 주고 싶긴 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괜스레 나서는 것 같아 모르는 척 지켜봤다. 원래 코칭은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먼저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게다가 다른 선생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취업 관련 말은 더더욱 아끼며 일상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그런데 평소 S가 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학부 생활을 화려하게 수놓았다는 무용담이 대부분이었다. '수업을 쨌다. 화끈하게 놀았다. 취업 같은 건 염려하지 않았다. 축제 때는 제대로 놀았다. 요즘 애들은 이도 저도 아니다'라는 식이었다. 결국 그렇게 논 결과 취업이 안 돼 임시로 학교에 다시 들어왔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S가 내게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며 내밀었다. 답답했던 모양이다. '내가 본 자기소개서에는 자기가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며, 그런 성격대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일관성 있게 강조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사실인지. 나는 S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평소 말과 행동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대답은 아니란다. 그런데 '왜 굳이 꼼꼼함과 치밀함을 이렇게 강조하느냐' 했더니 회계학과 특성상 그렇게 강조하는 게 좋다는 말을 취업 강좌에서 들었단다.

S는 지방대 회계학과 출신에 졸업 학점은 3.1점, 토익 점수는 600점 대. 이것이 스펙의 전부였다. 공모전 입상이나 사회봉사 활동, 해외 연수, 전공 관련 사회 경력, 자격증 등은 전무했으며,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S는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재무·회계 쪽으로만 입사 지원을 해왔고, 2년째 취업을 못 하고 있었다. 왜 재무·회계 쪽으로만 입사 지원을 했느냐고 S에게 물었다. S는 회계학과 출신이다 보니 딱히 다른 직종은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만일 재무·회계 쪽으로 취업하면 일이 만족스러울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굳이 한 직종에만 매달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S는 어떤 직종이 좋을지 몰라 전공 관련 직종으로만 지원했단다. 그러면서 자기한테 적합한 직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봐온 S의 행동과 성격을 고려해봤을 때 활달한 일을 하는 직종이 더 어울리겠다 싶어 영업직을 추천했다. 아무리 봐도 영업직 사원으로서의 자질과 적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장한 체격에 인상도 강하고 말도 잘하고 활발하고 힘든 일도 가리지 않으며 사람들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니 제격이겠다고 설명해줬다. 내 말을 듣더니 자기도 영업직이 성격에 맞을 것 같다며 이런저런 무용담까지 늘어놓는다.

나는 당장 자기소개서부터 완전히 바꾸라고 했다. 일단 기존 자기소개서 형식을 토대로 영업직 지원자 입장에 확실히 포커스를 맞춰 내용을 수정한 다음, 입사 지원을 다시 해보라는 거였다. 며칠 후 S는 영업직 지원자에 걸맞게 바꿨다는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왔다.

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한 유명 소셜커머스 업체에 보낼 내용이었는데, 그 회사의 대표 이미지 컬러인 녹색을 언급하며 녹색이 좋아서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다고 지원 동기를 쓴 거다. 세상에! 초등학생도 아니고, 입사 지원 동기가 어쩜 그렇게 단순하냐고 쏘아붙였다. S는 기가 한풀 꺾여 어떻게 고쳐 쓰면 좋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해당 기업의 서비 스를 이용해본 적은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이용 경험은 많다고 한다. 해당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낀 점, 그러니까 좋았던 점과 나 빴던 점, 개선했으면 하는 점, 경쟁사 대비 장단점 등을 써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입사를 하면 어떤 어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상품 등 을 더 유입해 일반 고객들을 만족시키겠다든지, 중소기업이나 영세 상인들의 판로 개척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식으로 써보라고 권했다. 코칭 덕분이었을까. 2년간 취업 문턱에서 미끄러졌던 S가 단번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합격한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해서 조교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학교는 중도 하차했다. 조교 자리가 갑자기 공석이 되는 바람에 일은 조금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S처럼 자기가 원하는 직종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하나의 방향을 정해 그쪽으로만 입사를 지원하는 청춘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애초에 목표 설정이 잘못되면 그 뒤 모든 일이 다 엉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현재 당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직업 또는 직무가 스스로에게 적합한 것인지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본다. 그 결과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취업 목표를 당연히 재설정해야 하고, 목표가 적합하다면 올바른 방식으로 준비해나가고 있는지 점검해본다. 좀 더 크게는 인생의 목적 및 삶의 방향성과 부합하는지도 점검해본다.

둘째, 진로에 대한 당신의 기존 관점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부분은 없는지 살핀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당신의 흥미와 적성, 강점은 무엇인지도 함께 탐색한다. 참고로 이런 과정이 또 한 번의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으려면 조언해줄 사람을 구하는 게 좋다. 당신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최대한 이끌어내거나, 취업·진로 전문가 또는 목표로 삼은 일의 현직 종사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는 방식으로 말이다. 혼자서만 고민하다 보면 아집에 빠지기 쉽고, 결국 길을 잃게 될 수 있다. 대학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전히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봐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당신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진로 방향과 취업 목표를 재검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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